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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기 위험수준]위기관리 시스템이 없다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23 05:23

수정 2014.11.07 11:59


최근 만연하는 집단이기주의는 공멸의 화를 자초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집단이기주의의 팽배와 이로 인한 구조개혁의 후퇴를 한국에 투자를 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환율이 뛰는 것도 동남아 통화가치의 하락과 함께 한국의 구조개혁 지연이 가져다준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게 외환전문가들의 지적이다.진념 재정경제부 장관도 23일 열린 당정협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현재 외국인들은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에 대해 차별성을 갖고 계속 접근해야 할지를 검토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이들은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의 연내 완결여부와 노조 등 각계 이익단체의 움직임을 정부가 극복할지 여부 등 두가지 잣대에 기대어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전파업결정에서도 나타난 집단이기=한전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통과돼 한전이 민영화되면 요금상승과 국부유출 등이 우려된다는 게 파업의 논거다. 노조 집행부 관계자는 “법에 고용승계가 보장돼 있는 만큼 노조의 파업결의는 노조의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다”고 지적하고 “민영화가 가져올 요금상승과 전력수급 불안정,외국인에 넘어갈 경우 생길 국부유출에 대한 우려에서 이같은 결의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그러니 일단 파업의 형태를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파업에 들어간다”면서 “그러나 3일간은 사실상 휴무기간으로서 파업에 따른 극심한 혼란과 이에 따른 비난을 피할 수 있으면서도 업무에 들어가지 않는 만큼 파업의 효과는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강순희 동향분석실장은 “노동계의 경우 구조조정의 과실은 경영진이 챙기고 피해는 노동자만 보는 인식에 노동계 반발의 뿌리가 있다”며 “한전노조파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진단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은=집단이기는 정부와 정치권이 키운 측면도 있다.정부는 기업의 구조조정은 줄기차게 요구하면서도 공공부문의 개혁은 게을리해온 게 사실이다.
정치권도 한편으로는 구조개혁을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표를 의식해 노조를 두둔하는 양태를 보여왔다.

정부의 공기업 개혁 부진은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을 낳았고 이는 고스란히 사회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당장 한전 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와 이로 인한 혼란과 사회불안의 증폭,산업활동 위축이 불을 보듯 뻔하다.LG경제연구원의 오정훈 책임연구원은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뒤로 미룰 경우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게 되고 사회불안이 야기돼 전 부문의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단이기와 구조조정 지연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불안의 원인 가운데는 정부의 정책 리더십의 훼손이 자리하고 있다고 단언한다.첫쩨 정부는 경제상황에 대한 오판과 자만의 우를 범했다고 그는 말했다.정부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1년 6개월만에 졸업했다고 선언했으나 그것은 수출증가,외환보유액 증액 등 실적호전에 부실이 가려져 속으로 곪아터지고 있는 것을 외면했다고 보았다.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라는 미명아래 죽을 기업을 살려 은행부실을 키웠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는 빅딜(사업맞교환)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시장을 무시하는 정책을 시행한 결과 시장의 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겼으나 현대전자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이는 기업이 시장에서 독자생존하도록 하지 않고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라고 오 연구원은 해석했다. 셋째 줄줄이 터지는 집권층과 주변 인사들의 뇌물사건은 집권층의 개혁의지에 대한 실망을 초래하고 이익집단의 제몫챙기기를 가속화한다는 지적이다.

◇대책은 없나=한국수출입은행 산하 해외경제연구소 송기재 소장은 “현재 노조의 움직임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공생하자는 게 아니라 공멸하자는 것”이라면서 “경제주체들이 목소리를 낮춰 협상을 통해 타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공선표 이사는 “한전의 파업여부는 구조조정의 진행여부를 재는 잣대가 될 것”이라면서 “노조의 반발로 민영화가 벽에 부딪힐 경우 공기업 전체의 구조조정은 끝난다고 볼 수 있으며 그 경우 외국인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명약관하하다”고 말했다.

/ john@fnnews.com 박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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