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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꽁트] 어머니의 피터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29 05:25

수정 2014.11.07 11:56


아들아이는 어렸을 적에 드라이버를 여의봉이라고 불렀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인 ‘손오공’을 보더니 드라이버를 빼들고 손오공이 여의봉을 휘두르는 흉내를 냈다. 딸아이는 요술공주 세리를 보고나서는 5번 우드를 가지고 세리가 요술막대기를 휘둘러 요술을 부리는 장면을 따라했다.

내 생일이었다. 친정 어머니 한테서 전화가 왔다.

“니 생일인데, 좀 다녀가거라.”

귀찮아서 미역국도 안끓여 먹고 있을 것이라는, 출가한 딸에 대한 안쓰러움이 어머니의 어투에서 묻어났다.


친정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거실 한 구석에 세워둔 아버지의 골프클럽 가방에서 퍼터를 빼들고 앞서서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기분이 묘했지만 어머니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나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으셨다.

나는 우리 집의 카펫위에서 퍼팅연습을 하다가 말 안듣는 아들아이에게 겁을 주려고 퍼터를 매처럼 휘두른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조금 겁이 났다. 내가 어머니를 노엽게 한 일이 있는가 최근의 내 행동들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마에 흰머리가 돋는 나이에 어머니에게 매 맞을 지경으로 잘못한 행동은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닌가.

“게 앉아라.”

“무슨 일이에요?”

매맞을 일을 저질렀으면 매를 맞아야 하겠지만 연유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너에게 보여줄게 있다.”

어머니는 여느 날과는 다르게 팽팽하게 긴장의 줄을 조였다.

“무슨…. 저에게 노여운 일이라도 있으세요?”

기어코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지만 어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이 퍼터를 장롱다리 안쪽으로 밀어 넣고 쑤석거렸다. 무얼 찾고 계셨다. 장롱다리 밑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코린내나는 양말짝이나 흘린 동전밖에 더 있겠는가. 과연 조금 있다가 퍼터헤드에 양말짝이 걸려 나왔다.

“열어보렴.”

양말짝을 열라니. 머리카락과 솜뭉치같은 먼지 덩어리를 달고 있는 양말짝은 손도 대기 싫었다. 내가 영문을 몰라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자 어머니가 손수 양말목을 열었다.
희한하게도 양말 속에서는 예쁜 비단주머니가 나왔고 비단 주머니를 풀자 조그만 보석상자가 나왔다.

“이게 뭔데 겹겹이 싸고 또 싸서 숨겨놓았죠?”

“니가 그랬잖니. 도둑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뒤지는 데가 버선목이라고.”

“제 말듣고 버선에서 양말로 바꿨어요?”

“그게 아니라… 도둑이 물건을 찾을 때… 일어서서는 찾아도 엎드려서는 안 찾는다고… 그 말도 니가 했잖니. 엎드린 자세로는 방어가 안되니까 장롱밑은 못 뒤진다고….”

“그러니까 장롱 밑으로 깊숙이 폐물을 숨겨놓으시고 꺼내려면 팔이 안 닿으니까 퍼터로 건져내는 거에요?”

연로하신 어머니는 가지고 있던 패물 중에서 딸에게 물려줄 만한 반지나 목걸이 등을 따로 장롱다리 밑에 보관했다고 하셨다.


참으로 골프클럽의 용도는 다양하다.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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