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fn 프로 우먼―C.J.´s World 낸시 최 대표] 잘 꾸며진 ´나´…관광홍보 출발점이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1.30 05:25

수정 2014.11.07 11:56



무릎 길이의 타이트 스커트에 하이 힐,긴 웨이브 파마를 즐기는 그는 뒷모습만 봐서는 30대,많아야 40대 초반이다. 그래서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슬슬 눈치를 보다가 으레 나이를 묻는다. 대개의 경우 완곡하게 답변을 회피하는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해 포기하고 만다. 신문이나 잡지의 인물기사에서 이름 뒤 괄호 안에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나 그의 경우 이것이 생략된다.

몇 번 그를 만나보면 이 또한 자기연출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기에 그의 고집을 인정해준 셈이다.

◇낸시가 뜨고 그 다음에 C.J.’s World가 떴다=홍보라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자신을 상품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C.J.’s World를 설립하고 처음에는 ‘낸시 최’라는 인물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사람을 잘 사귀는 그의 타고난 성품이 큰 몫을 했다.
한 번 알게된 사람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갔다. 그러다보면 우연한 기회에 사업상 연결이 되고 사업성장에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할 때쯤이 지나자 굳이 홍보를 하려들지 않아도 C.J.’s World를 아는 사람이 자연히 많아지더라는 것이다.

자기관리에 대한 중요성은 직원들에게도 적용된다. 서울 시청 앞 프레지던트호텔 902호,C.J.’s World 사무실을 찾으면 그를 비롯한 6명의 직원은 언제나 단정한 스커트 차림이다. 비즈니스 격식에 맞추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론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자기 자신을 추스리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다.

직원들은 일단 출근하면 캐서린 강·마리아 임·에블린 홍 등 영어이름만 사용하게 돼있다. 이름 하나에도 국제적인 감각을 입히기 위해서다.

◇나의 세계화는 미장원에서 비롯됐다=오스트리아,핀란드 등 10여개국의 관광홍보를 맡아온 낸시 최는 30년 가까이 200여차례의 해외여행을 했다. 물론 비즈니스출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가 해외에 나가면 반드시 찾는 곳이 있다. 바로 미장원이다. 현재의 헤어스타일도 최근에 다녀온 핀란드 출장 때 손질한 것이다. 얼핏 허영심으로 비치기 쉬운 그의 ‘미장원 철학’에는 깊은 속뜻이 숨어있다.

현지인의 삶을 체험하기에 미장원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미용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머리를 자르다 보면 어느새 다른 손님들도 한,두명씩 끼어들어 이야기꽃이 풍성해진다고 한다.

비슷한 이유에서 그는 해외에서 갑자기 아픈 곳이 생기면 대부분 참았다가 국내에 돌아와 치료를 받는 것과 달리 기회다 싶어 현지 병원을 찾는다. 그 나라의 의료체계와 병원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잦은 해외여행과 출장을 현지인의 일상과 직접 부딪히는 기회로 활용했다.

그가 생각하는 세계화는 이런 것이다. “영어회화를 능숙하게 잘 한다고 해서 세계화가 됐다고 볼 수 없어요.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국제홍보전문가로 성공한데는 이런 작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노력과 전략이 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순간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6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항공사에 첫 발을 들여놓은 뒤 세일즈매니저 등을 거쳐 90년 독립적인 홍보회사를 차린 낸시 최는 스스로를 ‘전문직 우먼 1세대’라고 말한다. 처음 취직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여자가 무슨 직업이야,시집이나 가지’라는 소리를 그도 들었다. 게다가 여자가 한가지 일을 평생 붙들고 전문 직업인으로 성장하기란 생각부터가 쉽지 않은 때였다. 세월이 한참 지나선 그 또래들이 컴퓨터의 보급 등 빠른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런 중에도 국제관광 홍보 전문가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데는 한 발 앞서 깨닫기 시작한 국제적인 감각이 큰 자산이 됐다고 말한다.

‘화려한 순간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공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는 이 말을 빼놓치않고 한다. 대개 다른 사람의 화려한 순간을 선망은 하면서도 거기 도달하기까지 눈물겨운 노력이나 힘든 과정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화려해 보이고 큰 일부터 하려고 덤비지 말 것을 그는 후배들에게 충고한다. 그 자신도 남들이 자존심에 상처가 간다며 기피했을 자질구레한 일들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음을 강조한다.

▲낸시 최는 누구

낸시 최는 64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팬암 항공사에 입사해 이후 20년 가까이 KLM 네덜란드 항공사 발권 및 예약 매니저와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세일즈매니저로 일했다. 외국을 다녀왔다고 하면 주변에서 '우러러보던' 당시에 항공사 직원의 특혜를 십분 활용해 유럽과 아시아,미국 등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그것도 1등석을 타고 말이다. 20대 젊은 여성이 1등석에 앉아있으면 재벌 딸 정도로 보던 때였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도 그런 식으로 일등석에서 여러번 만난 인연이다. 1등석을 자주 이용하다보니 국내외 인사들을 많이 알게 되고 이런 인연은 나중에 그가 사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외국항공사에서 터득한 경험과 일찍부터 잦은 해외여행 및 출장을 통해 익힌 국제감각을 바탕으로 그는 90년 C.J.'s World라는 이름의 관광홍보회사를 차렸다. 'C J'라는 명칭은 그의 본명 '춘자'에서 따온 이니셜.

회사가 처음 문을 열 당시 하와이 관광청 한국 디렉터로 시작한 그는 이후 핀란드,오스트리아,포르투갈,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필리핀,미국 올랜도,리히텐슈타인 등 10여개국의 관광홍보를 맡아왔다. 세계의 나라들을 한국에 알리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는 한국을 홍보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관광을 통해 세계와 한국을 잇는 노력을 계속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97년 UN으로부터 세계 평화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같은해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IAEWP) 평화대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96년엔 KBS 열린음악회를 비엔나에서 성공리에 주최해 비엔나 시장으로부터 요한 슈트라우스 황금훈장을 수상했다.

지난해엔 지난 30년 간 일과 여행에 얽힌 사연들을 '나는 세상의 창을 보았다'란 제목의 에세이집으로 발간해 지금까지 베스트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화여대 출신의 홍보 및 광고전문가 220명이 모인 '이화 A&P'를 만들어 후배들의 업계진출을 돕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 bidangil@fnnews.com 황복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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