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 꽁트] 나는 잘 세우는 남자가 좋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2.10 05:28

수정 2014.11.07 11:50


나는 프로 골퍼 중에서 필 미켈슨을 제일 좋아한다. 그가 좋은 첫번째 이유는 젊고 잘생겼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기가 막힌 테크닉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그가 묘기부리는 모습을 방영했다. 그는 공을 반대방향으로 날아가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왼쪽 벙커 턱에 걸린 공을 웨지로 쳤다.
공은 클럽 헤드에 묶인 것처럼 헤드를 따라 그의 머리위까지 원을 그리며 올랐다가 오른편에 위치한 그린에 떨어졌다. 그는 1m 앞에 사람을 세워놓고 로브샷을 구사하기도 했다. 볼은 20m 수직 상승했다가 2m 앞에 수직강하 했다. 전설 속의 궁수 윌리엄 텔을 능가하는 기술이었다.

필 미켈슨은 왼손잡이 골퍼다. 두 살 때부터 아버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보듯 아버지의 샷을 흉내내다가 왼손잡이 골퍼가 되었다고 했다.

연습장에선 모든 골퍼가 앞사람의 등을 바라보고 서서 볼을 친다. 그런데 왼손잡이는 일렬종대로 늘어선 타석의 맨 앞에서,매트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놓고 볼을 친다. 마치 조회시간의 반장처럼 혼자만 여러 사람을 마주보고 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왼손잡이는 분명 장애인이다.

그런 장애인 골퍼를 내가 어제 필드에서 만났다. 예전에는 괴상망측한 스윙폼을 본다거나,퍼터를 왼손으로 하는 사람만 봐도 웃음이 나와서 내 샷을 망치고는 했었다. 그렇지만 나도 강산이 한번은 변할 만큼의 세월을,들에서나 그물망 안에서 골퍼들을 만났다. 이젠 제 아무리 해괴망측한 폼으로 샷을 하는 골퍼를 만나도 웃음을 참을 줄 안다.

그러나 필 미켈슨만 빼고는 장애인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던 터라 그가 반대방향으로 어드레스를 했을 때 나는 킥킥거리며 캐디하고 농담을 하고 있었다.

“왼손잡이용 골프클럽은 우째 좀 멍청해 뵈지?”

“그러게요.”

한눈을 파는 사이 그는 첫 홀에서 파를 했다. 첫홀을 잘 쳤다고 나머지 홀도 잘치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첫홀에서 파를 하면 그날의 스코어는 꼭 죽사발이 되곤 했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첫 홀의 파는 징크스인 셈이다. 그런데 그에게 첫홀의 파는 마스코트였다. 2홀에서 그는 버디를 했다. 오잉 버디라…. 3홀에서 또 버디를 했다. 4홀에서는 파를 했다. 말을 안 붙여 볼 수가 없었다.

“혹시 이븐파 해보셨어요?”

“베스트가 68입니다. 8번 아이언 줘요.”

그는 나와 캐디에게 동시에 말했다. 그의 볼은 150야드 표시목 앞에 떨어져 있었고 핀은 뒤핀이었다. 8번 아이언으로 160야드는 무난하다는 투였다.

오르막이었는데도 그의 공은 정확히 핀 근처에 떨어졌다. 그린에 창처럼 내리꽂혔다가 공이 날아오던 방향을 거슬러서 두바퀴를 굴러 내려왔다.
그는 진짜 필 미켈슨처럼 공을 오똑 세웠다.

“왼뼈가 통뼈보다 세우는 기술이 좋은건가… 궁금하다 그치?” 나는 감탄을 하며 캐디에게만 들리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모님,저분은 세우는 기술 뿐아니라 넣는 기술도 무지 좋네요.” 그가 1m 남짓한 퍼팅을 성공시키는 것을 보고 캐디가 눈을 찡긋했다.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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