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붐 세대의 첫 해인 1946년에 태어난 조지 W 부시는 미국 최고 ‘정치 가문’의 후광 속에서 성장했다.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을 지낸 프레스콧 셀던 부시가 할아버지이며 41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를 아버지로 뒀다. 이런 점에서 그의 정치 감각은 선천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동생 젭 부시는 문제의 플로리다 주지사를 맡고 있다.
제43대 대통령 부시는 이번 당선으로 존 애덤스(2대)와 존 퀸시 애덤스(6대)에 이어 미국 역사상 2번째로 부자(父子) 대통령 탄생이라는 신화를 이룩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는 선거 기간 내내 갖가지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명문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것도 실력보다 가문이 작용했다는 설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부시는 31세 때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이후 그는 석유사업에도 손을 댔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40세이던 지난 86년 부시는 자유롭고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마감하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다. 석유회사를 팔아치운 그는 창조적인 일을 해보기로 작정하고 파산 직전의 텍사스 레인저스 프로야구단을 인수했다.
야구단이 좋은 성적을 올리자 구단주인 그의 인기도 덩달아 올랐다. 이러한 인기를 발판으로 부시는 지난 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고,당시 앤 리처드 주지사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됐다.
주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부시는 특유의 친화력과 초당파적인 협력정신으로 민주당측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냈다.
지난 98년 재선에 도전했을 때는 민주당 지도층에서 그의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그에게 감화를 받은 현직 민주당 출신 부지사가 공화당으로 전향할 정도였다.
부시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파에 얽매이지 않는 큰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했으나 고어와 접전을 치르면서 그의 친화력에 흠집을 남겼다.
부시는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텍사스주를 경영하면서 관리자의 철학과 자세를 터득했다. 그는 작은 정부,개인의 책임,지역정부의 자치권 확대 등 공화당의 기본정책을 가장 확실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텍사스주 역사상 최대규모로 2차례의 세제감면을 단행해 납세자의 짐을 덜어줬다.
그는 1977년 결혼한 로라 여사와의 사이에 쌍둥이 딸을 두고 있다.
▲사진설명
1.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조지 W 부시가 미드랜드 리틀 야구대회에서 한껏 폼을 잡고 있다.
2.조지 W 부시 가족의 단란한 한때. 왼쪽부터 딸 제나, 부시, 부인 로라, 딸 바버라.
3. 지난 68년 텍사스 항공경비대에 입대했을 때의 모습.
/ ucool@fnnews.com 유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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