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fn 프로 우먼―동숭아트센터 김옥랑 대표] ˝이 바닥에서 꽤 오래 버티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2.14 05:29

수정 2014.11.07 11:47


한 대기업 관리직에 있던 여직원 하나가 동숭아트센터(서울 동숭동)에 구직 신청을 하고 면접을 보러 온 날 김옥랑 대표(55·동숭아트센터 대표)가 물었다.

“돈 되는 자리 놔두고 돈 안되는 곳으로 왜 왔습니까?”

“문화가 좋아서요.”

“문화가 뭐죠?”

“영화 보고 연극 보는 거요. 그리고 돈도 벌고.”

“영화 보고 연극 보는 건 맞지만 돈 벌려고 왔다면 잘못 오셨군요. 문화는 삶이지 직업이 아니거든요.”

직업이 아니라 삶이라고? 그렇다면 동숭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옥랑대표는 자선사업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디지털시대,초스피드화되고 있는 현대에서 너도나도 최첨단 과학을 지향하고 있는 서울 한 가운데 서있는 문화공간,동숭아트센터의 김옥랑대표. 그가 돈 안되는 줄 뻔히 알면서 동숭아트센터도 모자라 국내 최초의 예술영화전용관이었던 동숭 씨네마텍도 짓고 최근 또 다른 예술영화전용관인 ‘하이퍼텍 나다’에다,예술가를 양성해내는 옥랑문화재단까지 설립한 이유가 뭘까.

“날 보고 문화사업을 왜 하느냐고 묻는 질문은 당신 김옥랑이 도대체 누구냐는 질문과 같은 겁니다. 문화는 궁극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대안이니까요.”

지난 84년 꼭두극단 ‘낭랑’을 창단해 국내 인형극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펼쳐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던 김대표. 무려 55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서울대학교 총장 관사 부지를 매입해 순수 민간 문화공간인 동숭아트센터를 설립한 사람. 그냥 갖다 줘도 내다 걸지 않을 예술영화만 선별해 본격적인 아트 영화 주류를 형성시킨 예술영화전용관 동숭 씨네마텍까지 개관한 장본인. 멍석 깐 위에 굿판을 벌일 예술인을 양성하자고 사재를 털어 옥랑문화재단을 설립한 이가 바로 김옥랑대표다.

“10여젼전 내가 처음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하더라도 내가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어요. 먹고 사는 문제에 초월할 수 있을 만큼 가진 자를 남편으로 둔 복 많은 중년 부인이 헐벗고 굶주린 연극계에 잠시 선심쓰러 들렀으니 어디 두고 보자는 식이었죠.”

나이 마흔이 넘어 문화사업하겠다고 나선 김대표를 ‘자기 과시욕에 넘치는 허울좋은 유한부인 문화사업가’쯤으로 여긴 것이 연극계 대부분의 시각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런 편견의 깊이만큼 김대표를 이해하는 깊이가 더해졌지만 처음에는 김대표에게도 적잖은 상처가 됐다.

“솔직히 문화사업에 대한 사명감으로 처음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예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내부의 반란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이 연극이어서 처음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에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한번쯤 가져보기 마련. 배 부른 자의 허위일지언정.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고 느꼈을 때,모두가 내게서 등을 돌렸다고 느낀 절실한 순간에 연극만은 내게 위안이 되었어요. 그래,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정체성을 찾아가기 마련이죠. 세상이 흔들리는 이유도 다 자기 정체성들을 못찾아서 빚어진 혼란이에요”

문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김대표가 시작한 문화사업의 첫번째는 바로 인형극. 84년 인형의 순우리말인 ‘꼭두’를 찾아내고 꼭두극단 ‘낭랑’을 창단해 인형극계 최초로 아동극의 한계를 벗었다는 주목도 받았다. 이후 순수 문화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이 자리잡았고 원목회사를 경영하던 남편의 도움을 받아 89년 동숭아트센터를 완공했다. 물질과 욕망의 기호뿐인 도시에 새로운 꿈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자부심도 생겼다.

시공을 넘나드는 최첨단 기술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미 위주의 할리우드나 브로드웨이식 소재에서 벗어나 무게 있고 진중한 주제를 다루는 연극과 영화만 김대표가 운영하는 공간에 설 수 있었다. 동숭 씨네마텍에서만 개관 이래 5년간 내건 예술 영화만 80여편이 넘는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 ‘킹덤’ 등. 순수 우리 연극인 ‘어머니’를 제작,공연해 ‘우리 연극 만들기’의 성공 사례를 낳았고 한국의 마타하리로 불리던 김수임의 생애를 다룬 연극 ‘나,김수임’으로는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한 연극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도 받았다.

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일이었지만 어차피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위안으로 몇 차례의 고비도 견뎠다. 매년 적자를 내면서도 옥랑문화재단까지 설립해 문화예술인 양성까지 손을 뻗었다.

옥랑문화재단은 뉴욕에 있는 록펠러재단 내 아시아 문화위원회와 제휴하고 한해 3명씩 미국에 연수를 보낸다. 멍석을 깔았으나 굿을 벌일 무당이 없으면 무당을 생산해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지금 당장 내로라할만큼 양성된 예술인은 없지만 아주 먼 훗날일이지언정 정녕 물욕과 이기심으로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문화를 이끌 힘을 키워온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8월에는 예술영화전용관 하이퍼텍 나다를 개관했다. 대신 그동안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자리매김해왔던 동숭 씨네마텍은 굳이 예술영화와 일반 영화를 구분하지 않고 내걸기로 했다. 예술영화를 포기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안되는 걸 억지로 끌어들이지 말고 더 잘해보자는 의미로 동숭아트센터 1층 커피숍을 개조해 하이퍼텍 나다를 개관했다. 독립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외 우수한 단편영화를 계속 개봉할 예정이다.

“예술이라는 절대 명제를 바꾸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상차림을 바꾸어보자는 거죠. 새로 아담하게 차린 극장에서 예술 영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겁니다.”

지난 84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은근과 끈기로 문화의 거리를 지켜왔던 ‘대학로의 곰’ 김옥랑 대표.

이제 대학로를 찾는 많은 발걸음들을 이끌어내는 데 김대표의 몫이 상당하다는 것을 주위에서는 공감하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그가 지나온 길을 보면 예술 문화사업에로의 여정이 참 외롭고 힘든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10여년이 넘은 내년쯤에서야 동숭아트센터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그는 내다본다.

“살아 생전에 김옥랑이 잘했다 소리 듣는 건 이미 포기했고,아주 나중에라도 우리 사회가 빚어냈던 부조리한 일면들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으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김대표는 앞으로 10년 안에 국제독립영화제를 동숭아트센터에서 개최하고 싶다고 했다. 또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적 정서와 미학을 바탕으로 한 세계성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인재 양성의 메카까지 설립해보고 싶다고 했다. 물질이 낳은 현대문명은 속물주의란 등식이 성립되는 세상에서 문화의 꿈을 이루어가는 김옥랑대표는 미래의 새로운 비전이 아닌가 싶다.

▲김옥랑대표는…꼭두극단 ´낭랑´ 세종문화회관 공연후 주목받기 시작

1945년생.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잠시 공부했다. 40세가 넘은 96년,미국 퍼시픽 웨스턴 대학 극장경영학과를 졸업할 정도로 배움에의 열정 또한 강하다. 71년 원목회사를 경영하는 승상배씨와 결혼,남편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84년 11월 꼭두극단 ‘낭랑’ 창단으로 문화활동을 시작했다.

국내 인형극단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개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86년에는 계간지 ‘꼭두극’을 창간,통권 10호까지 발간했다. 동숭아트센터 개관을 앞두고 전문연기자 재교육을 위해 아리 아카데미를 개관,연기 재교육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89년 국내 최초 대규모 민간 문화 공간인 동숭아트센터를 설립하고 500석 규모의 동숭홀과 2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다양한 공연문화를 선보여 공연계 시선을 모았다. 프로그램 빈곤과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했다가 6년만인 96년 다시 순수 공연장으로 환원했다.
순수공연장 환원 후 연극 ‘어머니’ ‘나, 김수임’ ‘천년의 수인’ 등을 제작,공연했으며 특히 창작극 ‘어머니’는 관객 동원에도 성공해 ‘우리 연극 만들기’의 성공사례를 낳았다.

91년 문화예술인 육성과 내실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옥랑문화재단을 설립하고 미국과 제휴를 맺었으며,95년 예술영화 상영을 위해 동숭 씨네마텍을 설립하고 문화체육부로부터 예술 실험 영화 전용관으로 공식 승인을 받았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동숭 씨네마텍을 최근 일반 영화관으로 돌리는 대신 올해 8월 예술영화전용관 하이퍼텍 나다를 개관해 ‘형식적인 명분과 형식적인 영화보기’에 반기를 드는 분위기 조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 bomb@fnnews.com 박수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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