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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살리자―집단利己 이젠 버릴때]美 구조조정을 보라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2.21 05:31

수정 2014.11.07 11:44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여기까지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끼리 아옹다옹 다투는 사이에 날이 샐까 두렵다.

시야를 넓혀보자. ‘주식회사 미국’엔 현재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10년 장기 호황이 끝물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서자 너나없이 자발적으로 군살빼기에 나섰다. 자동차 빅3인 제너럴 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를 필두로 마이크로소프트(MS)·질레트·푸르덴셜증권에 이르기까지 업종 구분이 없다.

이런 마당에 한국은 구조조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정부의 무원칙과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가 발목을 꽉 틀어잡고 있다.

이달초 민영화를 둘러싼 한전 노사의 극적인 타결은 공기업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면 합의설이 불거져 모양새를 구겼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라면 어림없었을 일이다. 대처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영국병을 고쳤다. 지난 79년 대처가 집권하기 전 영국은 사실상 노동당 정부와 노조가 공동으로 다스리는 나라였다.

대처는 석탄·철강 노조에 원칙대로 맞섰고 국영기업을 속속 민영화해 증시에 상장했다. 집권 당시 1300만명이던 노조원 수는 96년 800만명으로 줄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은 ‘대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란 보고서에서 ‘노조 약화와 민영화야말로 대처가 거둔 가장 큰 승리 중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지난 2일 부채 경감을 요구하는 농민들이 경북 의성군청에 몰려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갑수 농림부 장관이 군수실에 2시간 가량 갇혀 있어야 했다. 농민들은 수시로 도로를 점거하면서 실력을 행사했다.

이 덕분인지 국회는 총 4조5000억원이 소요될 ‘농가 부채경감 특별조치법’을 곧 통과시킬 모양이다.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도 발목을 잡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3일 밤 국민은행 김상훈 행장은 “노조원의 뜻에 따라 주택은행과의 합병 논의를 일단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행장실에 2일이나 구금돼 온 김 행장이 강압에 굴복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행장 감금으로 노조가 이득을 본 것은 없다. 정부는 두 은행 합병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얻은 게 있다면 반목과 갈등의 증폭 뿐이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세계 굴지의 금융그룹 체이스맨해튼과 JP모건은 연내 합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총자산 6680억달러(약 800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JP모건 체이스’가 탄생하기 직전이다.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이어 미국 3위 규모다.

JP모건 체이스는 전체 직원 9만5000명 가운데 5000명을 감원할 방침이다. 두 회사는 “합병 시너지 효과로 오는 2002년부터 연 30억달러의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금융개혁은 4대 은행그룹으로 골격을 잡았다. 지난 9월 출범한 미즈호홀딩스는 다이이치간교·후지·니혼코교 3개 은행을 거느리고 있다. 총자산 141조엔(약 1500조원)으로 도이체방크를 제치고 세계최대를 자랑한다.

반면 국민·주택은행은 합쳐봤자 총자산 130조원(6월 기준)에 불과하다. 국제무대에 명함을 내밀기에는 덩치부터가 너무 왜소하다. 국경없는 금융의 무한경쟁 시대에 누가 유리할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분명해진다.

부도난 대우자동차는 감원을 놓고 노사가 또 맞서있다.

비슷한 시간 초일류 기업 GM은 전세계 직원의 4%선인 2만여명을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GM은 또 80개 모델 가운데 판매가 부진한 16개 모델을 아예 단종시키기로 했다. 103년 전통의 올즈모빌 모델도 과감히 포기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GM이 “지난 90년대 초 어두웠던 시절 이래 가장 폭넓은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국민이 금모으기에 나설 때의 일체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만 무사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금은커녕 놋쇠 모으기도 어려울 판이다.

씀씀이는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한쪽에선 국제통화기금(IMF) 때보다 더 지독한 소비 실종에 울상이다. 다른 한쪽은 딴 나라다. 올 들어 11월까지 고급양주 반입은 지난해에 비해 6배 증가했다. 출국 여행자 수는 약 449만명으로 22% 가까이 늘었다.

남미의 병자 아르헨티나는 지난 18일 IMF 등으로부터 397억달러를 또 긴급수혈 받았다.
예상대로 노조는 정부의 긴축기조에 반발해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강건너 불이 아니다.


세계는 두 종류의 국가군(群)으로 나뉘어 가고 있다. 구조조정에 성공하는 나라와 실패하는 나라로.

/ paulk@fnnews.com 곽인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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