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분명한 구조조정 원칙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2.24 05:32

수정 2014.11.07 11:42


분명한 구조조정 원칙을
정부는 지난 주 금융산업노조와 협상 끝에 노조측 요구를 대부분 그대로 수용했다.수용했다기 보다 정부가 스스로 금융구조조정의 원칙을 포기하고 노조에 굴복한 셈이다.은행파업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이에 따라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금융지주회사에 편입하기로 되었던 4개 은행에는 자생기회를 부여한다는 명분으로 2002년 6월까지 실질적인 구조조정을 유예하게 되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노조들은 두 은행 간 합병협상의 백지화를 요구하면서 파업에 들어갔다.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노조는 합병철회를 요구하고 있다.여기에 대해서 정부는 또 어떻게 대응할 지 주목된다.

정부가 아직도 개혁을 추진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지 의심스럽다.김대중 정부가 트레이드마크처럼 내세우던 금융, 기업, 노동,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은 이제 별로 신통한 효과도 없이 끝나는 것 같다.참으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정부는 근래에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스스로 구조조정의 원칙을 무너뜨림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지난 7월에도 정부는 금융노조와 석연치 않은 타협을 했다.은행파업을 막기 위해서 정부는 은행의 강제합병이나 인력, 조직의 축소는 없다는 데에 합의했다.그러면서도 부실은행에 추가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금융지주회사에 편입시킨다는 것이다.

개혁추진 의지와 능력 의심된다
이것은 오직 공적자금의 낭비며 무늬만의 구조조정일 뿐이다.금융구조조정은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지난 주 노·정간 협상결과는 이같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하겠다.언필칭 우리 경제의 살길은 구조조정 뿐이며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주장해 온 정부가 왜 이런 행태를 보이는지 알 수 없다.

기업구조조정도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우자동차, 현대건설 등 대기업에 구조조정은 사실상 구제금융을 의미한다.정부는 부실기업을 퇴출, 청산시키기 보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등으로 자금지원을 계속해왔다.기업을 죽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살리는 구조조정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중견기업 및 대기업 중에 약 20%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이다.이런 한계기업들이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금액이 무려 120조원에 이른다.이들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않는 한 금융구조조정은 ‘밑 빠진 시루에 물붓는’ 식으로 한없이 공적자금 부담만 늘어날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이 부실은행, 부실기업을 모두 끌어안지 말고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한다고 권고한다.부실은행, 부실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으면 금융시장 전체가 자금난을 겪게된다.부실대출에 따른 금융기관의 추가 부실이 발생하고 결국 공적자금 투입이 부실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낭비된다.이에 따라 공적자금 투입과 국민부담이 계속 늘어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도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을 모두 구제할 방법은 없으며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그러나 정부의 원칙없는 구조조정이 마침내 구조조정을 후퇴, 지연시킴으로써 앞으로 부실은행과 부실기업의 구제를 위해서 국민부담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다.또한 금융시장의 신뢰가 떨어져서 증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금융위기가 재발할 우려가 있다.

공공부문과 노동부문의 구조조정은 더욱 부진하다.특히 공공부문 개혁은 최근 노조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어 실효성있게 추진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으로 국민부담이 늘어나건만 노조가 자구노력은커녕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는 것은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고 하겠다.

대처수상의 확고한 의지 배워야
이렇게 볼 때 정부의 4대 부문 구조조정은 어느 하나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정부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너무 쉽게 낭비하고 국민은 영문도 모르고 끝도 한도 없이 이를 부담하고 있다.이미 정부는 2차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6개 부실은행의 주식을 완전 소각함으로 기왕에 투입한 공적자금, 8조3000억원을 날려버렸다.

무책임한 은행임원, 정책당국자, 부실기업주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부실은행의 노조가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총파업을 일삼는다면 노조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노조도 구조조정을 반대하기 보다 자구노력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그럼으로써 정부, 기업 및 금융기관의 고질적인 도덕적 해이가 해소되어야 한다.노조와 정부의 도덕적 해이로 부실은행과 부실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공적자금만 낭비한다면 우리의 대외신인도와 국제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영국의 대처수상이나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같이 법의 지배아래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 시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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