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2000년 정치·외교 결산―<1>남북정상의 악수] 분단 반세기만에 화해 물꼬

김종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2.26 05:33

수정 2014.11.07 11:41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 일행을 실은 비행기가 서울로부터 1시간 거리에 놓여 있는 평양 외곽의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분단 반세기만의 일이었고, 통일을 논의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상기된 김대통령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50대의 꺼림없는 표정으로 트랩에서 걸음을 한발 한발 내디뎠고,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반듯하게 구두를 닦고 남에서 온 노정객을 예로써 맞았다. 그렇게해서 남북간의 화홰의 무드는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날 남북의 모든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회한과 반성의 눈물을 머금었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한이 한반도 주권문제와 관련, 그동안의 수동적인 위치에서 탈피해 능동적으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2000년 한반도의 가장 획기적인 일로 기록할 만하다.


당연히 회담을 둘러싸고 대내외적으로 의견이 다양하게 일었다. 보수세력으로부터는 ‘속도조절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대세는 ‘그래도 남북 정상회담이 시대의 흐름을 바꿔 놓은 일대 사건이었던 것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외교안보연구원의 서동만 교수는 “북한의 변화 또는 남북관계가 ‘과거로 역전될 수 없는 지점(point of no return)’을 통과했느냐는 문제를 놓고 볼 때 단순히 남북한의 관계에만 국한해서 해석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북·일, 북·미,북·중,북·러 관계를 두루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정상회담은 4500만 민족을 울린 남북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수에 국한되는 남북 이산가족 만남은 오히려 많은 이산가족의 가슴에 멍에를 짊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명지대 신율교수는 “인간이 살아 있음에 부모형제가 있는데, 우리는 기본적인 인도주의적 윤리조차도 등한시 해왔다”고 지적하고“윤리적 접근이 하루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는 또 남북경협의 확대로 이어졌다. 이중과세면제협정을 비롯한 주요 경제현안에 서명한 것은 남북이 경제적 동반자관계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21세기 통일 한국으로 나가는 초석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북측의 터무니 없는 경제원조요청은 ‘옥에 티’로 지적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 싼 주변 4강의 입장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50여년간 적대관계를 지속해온 북한과 미국이 조명록 차수의 미국방문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등을 통해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놀랄만 한 일이었다.

일본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에 대해 환영을 표하며 북-일관계 정상화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반도 상황이 개선되는 경우 북한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일본만이 뒤처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중국의 경우 남북관계의 호전에 따라 북한과 미국이 관계정상화하려는 움직임에 미묘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단은 남·북·미간의 관계진전에 환영을 표명하면서도 한반도 정세의 급속한 변화에 대해 경계심을 품고 있다. 특히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에 때맞춰 츠하오톈 중국 국방부장이 북한을 방문한 것에서 중국의 입장을 읽을 수 있다.


러시아의 입장은 다소 느긋한 상황이나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 공동보조를 맞춰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북한은 한·미·일 삼각공조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유럽 각국과의 외교관계를 서두르등 2000년은 한반도 주변정세를 한국주도로 변화시킨 외교사의 한 획을 긋는 해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 jongilk@fnnews.com 김종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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