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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한국경제 해외전문가 진단]˝개혁의지 확실할때 세계신회 회복될것˝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2.31 05:34

수정 2014.11.07 11:36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우려 속에 2001년 한국 경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금융과 공기업 부문의 구조조정 마무리가 현안으로 걸려 있다. 신사(辛巳)년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미국 밀큰연구소의 힐튼 루트 세계경제분석 실장에게 들어본다. 루트 실장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고문을 역임한 아시아통으로 한국경제에도 정통하다.<편집자 주>
아시아 몇몇 나라의 경제가 기적을 이룬 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파국으로 돌아선 것은 해당 국가들에는 갑작스럽고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제 이들 국가는,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자신들이 적절한 조처를 취해왔음을 전세계 투자가들에게 확신시켜야만 한다.
더 이상 특수하지 않은 아시아는 사업관행을 국제 기준에 맞춰야만 한다. 아시아 특유의 사정 때문에 외국 업체들이 글로벌 전략을 아시아에 적용하기 곤란하다고 느낀다면 투자자들은 아시아 시장에서 떠나고 말 것이다.

지난 97∼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다국적 기업들은 특히 아시아에서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법적·정치적 환경이 개선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10년에 걸친 동아시아의 급속한 성장세 속에서 기업들은 잘못하면 시장에서 밀려날까봐 이익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성장에 매진해 왔다. 그러나 성장과 금융개혁에 대한 기대가 잦아든 지금 투자가들은 자신들의 투자에 대한 보상이 적절할 지 가늠하기 시작했다.

손실을 내는 지사나 사업부문을 본사에서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시아 진출 외국기업의 경영자는 상당한 경쟁 압력을 받고 있다. 아시아에 투자하는 기업 경영자는 세계 여타지역의 투자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잣대로 자신의 아시아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만 한다.

대우자동차와 한보철강을 포드와 네이버스에 각각 매각하려던 한국 정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아시아에 대한 국제기업들의 새 접근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포드와 네이버스 모두 우선협상 대상자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수를 포기하고 협상 테이블에서 철수한 것은,이 두 기업의 본사에서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전 더욱 확실한 수익전망을 원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아시아 국가들에는 경쟁력 제고로 통하는 중요한 방편이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으로의 민간자본 순유입 규모는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줄었다. 다행히 최근 민간자본 유입이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지난 96년의 최고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가들로서는 아시아 구조개혁이 분명 진전되고 있다고 확신할 만한 근거가 필요하다. 기업의 은행대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정부가 은행부실의 보전을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히 보증하며,정부의 금융권에 대한 건전성 감독이 느슨한 국가들은 앞으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외국 관행에의 적응 또는 양보 쯤으로 파악한다면 이는 역효과만 날 뿐이다. 필요한 개혁이란 대부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들이며,세계차원의 위험성에 대처하기에 적합한 전략에 기반하고 있다. 아시아 바깥의 기업들은 민간 투자자본에 스스로를 매력적인 존재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시아의 많은 기업들과는 달리 정부로부터 각종 보장을 은밀히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세제의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기업에다 대고 회계기준의 개선을 권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우 정부가 아직도 현실적으로 준수하기 어려운 세제를 고집하는 바람에 관리의 변덕스러운 개입 소지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정치인들에게 세금과 관련된 부정한 거래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인 세제가 확립되지 않는 한 기업들은 정확한 대차대조표를 숨김없이 공개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미래에 대비하고자 한다면 지역 통합과 지역 특화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는 지역 선물·증권시장의 통합 등 지역 금융시장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무엇이며,또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금융시장이 통합되면 외부 기관의 감독이 수월해지며 국가 정책이 통합 이전보다 책임있게 결정되는 이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장거리통신·금융서비스의 아웃소싱 등과 관련한 지역차원의 협력증진에 필요한 조처도 반드시 취해져야 한다.

뉴질랜드는 가장 비근한 예다. 뉴질랜드에는 이제 뉴질랜드인이 소유한 은행이 없다. 뉴질랜드 국민은 외부세력이 자국의 소규모 경제를 삼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없이 전보다 양질의 금융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지역 통합은,자국의 개혁에 저항하는 국내 소수 엘리트 권력층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지역차원의 제도가 잘 설계돼 있을 때 작동한다. 잘못된 정책의 시행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납세자와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초(超)아시아적 귀족정치의 태동은 재앙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아시아의 제도개혁 작업은 내부로부터의 만만치 않은 벽에 부딪혀 낙관하기 어렵다.
거부권을 지닌 권력 엘리트에게 밉보인 정치 지망생들이 어찌 감히 선출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국제 자본시장이 개방화의 물결을 타면서 아시아의 정책 결정자들은 선진 기업지배구조 등 각종 제도와 규정을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그리고 자본시장 발전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겠지만,부를 거머쥔 기득권 세력과 정치인 사이의 유착관계가 극복되지 않는 한 개혁은 요원할 뿐이다.

한때 아시아의 통화 및 무역정책을 꼼꼼히 따졌던 외국 기업들은 이제 아시아 진출에 앞서 선거자금의 투명한 관리 등 정치 개혁의 가시화 여부를 먼저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외부의 신뢰감을 회복하기 위해 아시아 지도자들은,그들의 야심찬 경제 목표가 그에 버금가는 야심찬 정치·금융개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확신시켜야만 한다.

힐튼 루트(미국 밀큰 연구소 세계경제분석실장)
/ rock@fnnews.com 정리=최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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