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금융산업의 좌표―진단과 전망]´슈퍼급´ 몸집맞는 ´겸업화´ 옷입어라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2.31 05:34

수정 2014.11.07 11:36


올해 한국의 금융산업은 지난해 이상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겪을 전망이다.

대형화-겸업화-국제화(개방화)-전자금융화의 물결속에 금융기관간 합종연횡이 어는 해보다도 훨씬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변화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헤쳐 나와야만 한국의 금융산업은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변화에 휩쓸려 방향을 잃으면 한국금융의 미래는 어둡고 금융혼란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대형화 제대로 해야 한다=올해는 은행-증권-보험-종금 등 각 부문에서 리더들의 입지가 보다 확고해진다. 또한 이들을 중심으로 금융계의 대변혁도 가속화된다.


은행쪽에서는 국민-주택 합병은행과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 등 ‘2강’의 역할이 주목된다. 이들이 변화를 주도하는 리딩뱅크가 될 경우 한국의 금융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꾀할 수 있다. 리딩뱅크로 돈이 몰리면 이들 은행의 대형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시장지배력과 금리결정력이 강해진다. 금융시장과 금융기관들을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추진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합병이나 지주회사 설립 등을 통해 대형화의 기반을 구축한 은행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금융 구조조정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한국의 금융산업은 올해가 성패를 가름하는 갈림길인 셈이다.

국민-주택 합병은행의 경우 1000여개가 넘는 방대한 점포와 2만여명이 넘는 인력을 인위적인 감원없이 효율적으로 재배치해야 하는 지난한 숙제를 안고 있다. 배타적 기업문화가 강한 두 은행이 ‘화학적 결합’에 성공할 수 있을 지도 아직 미지수다.

내년 2월께 출범하는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의 선결과제는 더 많다. 한빛은행을 필두로 부실은행들을 하나로 모으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털어냈지만 시스템의 부실까지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실을 양산해 낸 허술한 조직을 뜯어 고치지 않으면 막대한 공적자금은 또 허공으로 날아가게 된다. 과잉인력과 중복조직도 하루 빨리 해소해야 한다.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에는 부실 보험사와 부실 종금사까지 뭉쳐 있기 때문에 통합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탁월한 전문경영능력이 필수적이다.

양 은행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가까스로 만들어낸 대형은행은 몸집만 큰 슈퍼 부실은행으로 전락하게 된다.

보험-증권-종금-금고 등 2금융권에서도 이미 강자들의 독주가 시작됐다. 생명보험에서는 삼성-교보-대한생명 등 ‘3강’이,손해보험쪽에서는 ‘삼성-현대-동부-엘지-동양화재’ 등 5강이 주축이다. 그러나 생보-손보 모두 삼성의 입지가 갈수록 막강해지는데 반해 다른 라이벌들은 아직 대형화의 기반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논하기 어려운 수준에 있는 것이다.

종금에는 동양-현대울산종금 합병사와 부실 종금사를 묶은 하나로종금의 ‘2강’ 체제가 구축됐다. 그러나 종금업 자체가 계속 시장기반을 잃고 있어 중견 투자은행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선두 종금사들의 성공적인 변신은 ‘대형화’와 또 다른 ‘전문화’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대형화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를 수 없지만 금융기관이 모두 대규모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적당한 규모와 기동력,응용능력을 갖추고 급변하는 틈새시장을 파고 드는 전문 금융기관도 필요하다.

◇겸업화-국제화 이제 시작이다=산업계에서는 선단식 그룹체제가 해체되고 있지만 금융계에서는 그룹화가 세계적인 추세다. 은행-증권-보험을 다양하게 엮은 종합금융서비스를 시장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고객이나 기업고객이나 금융기관에서 원하는 것은 안전성과 수익성,편리성이다. 이런 ‘필요’에 응하려면 금융기관도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겸업체제를 갖춰야 한다.

한국 금융기관들의 겸업화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해 은행과 보험 영역을 합친 ‘방카슈랑스’를 시작했지만 흉내만 내는데 그쳤다. 은행 점포에 보험 창구를 두고 손님을 받고 있으나 실적은 집계를 낼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나마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와중에 초보적인 금융계열화도 무산되고 말았다. 대형 은행이나 증권사,보험사 모두 생존을 위해 부담이 되는 계열 금융기관들을 정리하는데 바빴다.

그러나 올해는 본격적인 겸업화 시대의 원년이 될 수 있다. 올해부터는 은행이나 증권사 등을 모기업으로 하고 그 밑에 금융계열사를 수직적으로 두는 방식 대신 은행-증권-보험사 등이 하나의 금융 지주회사 밑에 병렬하는 발전된 겸업체가 등장한다. 정부 금융지주회사 이외에 국민-주택 합병은행과 신한은행·조흥은행·삼성생명·교보생명·동양그룹 등이 모두 이같은 형태의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추진중이다.

여러 금융계열사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는 미국식이다. 유럽쪽에서는 한 금융기관이 모든 서비스를 취급하는 ‘유니버설 뱅킹’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은행인지 증권사인지,아니면 보험사인지 우리 개념으로는 제대로 규정할 수 없는 금융기관들이 많다.

어떤 식에 따르건 막대한 고객자산을 책임질 수 있는 최첨단 자산운용능력과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겸업화 능력을 갖춘 대형 금융기관만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 한국도 뒤늦게나마 대형화와 겸업화의 기본 구도를 구축했다. 따라서 한국 금융산업의 세계화 역시 출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해외에 점포를 많이 낸다고 세계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세계화는 이미 실패했다. 외환위기 이전 뉴욕·도쿄·런던·취리히 등에 경쟁적으로 해외점포를 냈던 은행이나 증권사들은 대부분 고배를 마시고,점포를 철수했다.
점포가 해외에 있다 뿐이지 동포나 국내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경쟁력은 물론 수익성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철저히 현지화하지 못하는 국제화는 세계화가 아니다.
우리 금융기관도 올해부터는 해외시장에 침투해 현지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현지 금융기관들과 정면으로 경합할 수 있는 세계화의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 kyk@fnnews.com 김영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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