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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위기를 직시하자


새해를 맞는다. 새해 새 아침의 태양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 새로운 꿈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올 한해 기대만을 가지기에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척박하다. 희망을 잃지 않되 당면문제에 대처하지 않으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이 감돌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는 참으로 어려운 시련과 좌절의 해였다. 외환위기를 넘어 높은 성장을 이룩한 기쁨도 잠시, 거품이 사라진 자리에 불만이 쌓이고 개혁이 실종된 자리에 불신이 잉태되었다. 남북정상회담이후 고조된 이산가족상봉에의 기대 또한 북측의 무성의로 점차 퇴색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뉴 밀레니엄, 새 세기를 맞이한다는 연초의 벅찬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좌절로 다가왔고 갈등의 심화와 신뢰의 실추,책임의식의 실종으로 위기는 증폭되었다.

이제 새해 새 아침,우리 모두는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짐해야할 시점이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고 실패를 도약의 원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야멸찬 결의를 다져야한다. 문명사적인 대변환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은 지난해보다 훨씬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힘을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미국’을 지향하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 우리의 남북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것이며 10년 호황을 구가해온 미국경제가 둔화하면서 뚜렷해지고 있는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는 우리 경제를 목죌 것으로 우려된다.국제통화와 국제유가가 언제 요동칠지 모르는 불안도 가시지 않고 있다.

높아지는 국제적 파고를 헤쳐나가면서 또 한차례 웅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 위기의 실체를 직시하고 이를 타개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의 위기는 무엇보다 원칙과 신뢰의 실종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 한해 온 나라의 화두가 되었던 개혁은 원칙없는 포퓨리즘에 사로잡힌 나머지 집단이기주의만을 키워왔고 남북화해에 앞서 이루어야할 동서화합은 내몫챙기기에 급급한 정치권의 이해로 인해 더욱 멀어지고 오히려 갈등만을 부채질했다.

정부가 일관성있는 정책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인기 영합 정책에서 과감히 탈피, 국정을 일대 쇄신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바로 이 때문에 제기된다. 마침 어느 선거도 실시되지 않는 올해야말로 현정부가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해다. 정파적 이해에서 벗어나 정책에 책임을 지고 공평무사한 법 집행으로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법과 질서를 확립하는 일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만약 정권재창출에 연연한 나머지 무리수가 두어진다면 결과는 반대로 나타날 것임을 국정책임자는 알아야 한다.

가뜩이나 올 한해 우리 경제기상도엔 먹구름이 깔려있다. 경기하강세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고 위축된 소비심리와 투자부진은 성장률의 하향조정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모든 예측기관들의 새해 성장 전망은 지난해의 절반수준을 넘지 못한다. 무역흑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소득은 감소하고 실업은 증가하며 빈부격차가 심화하면서 중산층의 두께는 점차 엷어질 것이라는 데에 이론이 없다.

이같은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당면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는 것이라는 데에 이론이 없다. 정부도 지난 한 해 공공·기업·금융및 노동부문의 개혁을 최우선 국정목표로 잡고 추진해 왔다. 그러나 원칙없는 땜질식 처방으로 시행착오만을 거듭했고 이면합의로 집약되는 ‘무늬만 구조조정’은 도덕적 해이만을 부추겼다. 대외신인도를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경제의 틀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올해에, 그것도 빠른 시일안에 우리는 이 과업을 완성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은 공정한 룰에 의해 분담되어야 한다. 부실기업책임자나 정책입안자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노조 또한 개혁에 동참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중산층을 어루만져주는 정책의 개발또한 시급하다. 세계 제일의 주가 폭락으로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반면 신용불량자와 가계파산자는 늘어나고 있는 오늘이다. ‘국민의 정부’에 걸맞지 않는 일이다. 정보화과정에서 나타나는 디지털 디바이드에 대한 대책도 서둘러야함은 물론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제는 오염된 정치권의 자정과 개혁이다.
새해 벽두 정치권은 자기희생을 각오한 결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정치자금까지를 포함한 자금세탁방지법과 부패방지법 등 개혁입법으로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과 공직자의 부패척결 없이는 기업의 투명성이나 국민의 신뢰도, 근로자의 참여나 투자환경의 개선도 기대할 수 없다.

새 즈믄의 첫 해를 보내고 온누리에 비추는 새해 첫날의 햇살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 구각을 벗어던지고 역량을 응집하여 미래를 개척하자. 위기를 극복하여 도약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