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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꽁트] ´오너´는 미모順? 살많은 順?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12.31 05:34

수정 2014.11.07 11:35


기자가 부시 전(前) 미국 대통령과 인터뷰를 했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달라진 것 중에 가장 서운한 점은 무엇입니까.”

골프광이었던 부시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통령일 때는 라운드를 하면 언제나 오너였는데,이젠 동반자들에게 그 영예를 자주 뺏기는 것이죠.”

‘프레지던트 오너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은 첫 홀의 제비뽑기에 구애됨이 없이,전 홀의 타수에 상관없이 언제나 오너라고 한다.

오너는 ‘팅그라운드에서 제일 먼저 치는 우선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가지는 낱말로써,어디서든지 영예를 뜻한다.

그러니까 오너의 영예는 본인도 잘 챙겨야 하지만 동반자들도 오너를 받들어줘야 함이 옳을 것이다.


여태껏 나는 친한 친구들과의 라운드에서는 그런 에티켓을 잘 지키지 못했다. 첫 홀의 오너를 정하는데는 우리만의 규칙이 있었다. 영예의 오너를 뽑는 것하곤 질이 달랐다.

“오늘은 미모순으로 치니까. 미스코리아 나갈래다 참은 경희부터 쳐라.”

“안돼,지난번에도 미모순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살 많은 순서대로 하자. 훨훨 날아다니는 배둘레햄,인숙아 너 올라가.”

“아냐,돈 많은 순서로 해. 골프장 회원권 3개나 가지고 있는 희자,네가 나서봐.”

“우리 그러지 말고 남편의 나이가 적은 순서대로 치자. 가장 어린 남편하고 사는 현옥이가 영계의 기(氣)를 받은 샷을 보여줄거야.”

“결판이 안 나네. 첫 홀에서 오너 못하면 오늘 하루는 오너 못해볼 내가 칠게.”

첫 티샷을 하기도 전에 입으로 기를 다 뽑으며 소풍나온 듯이 놀았다. 그렇지만 오너이기에 영예가 아닌 모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모님은 치셔도 돼요.” 앞조가 아직 두 번째 샷을 마치지 않은 줄 알지만 모처럼 찾아온 오너의 기쁨을 맛보려고 팅 그라운드에 올라서서 가슴을 쫘악 펴는 순간에 캐디가 내뱉는 안내방송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페어웨이에서 얼쩡거리는 앞조가 있는곳까지는 볼을 못 보낼 것이라는 야유로만 들리는 것을 어찌하랴.

언젠가 나는 전(前) 대통령과 라운드를 했다. 나는 영부인과 조를 이뤘다. 골프장에서도 전(前) 대통령과 영부인에 대한 예우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대통령 골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몸소 겪어봤다.


그렇지만 그때는 ‘프레지던트 오너’라는 말을 몰랐다. 그랬기에 나는 영부인과 오너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18홀을 돌았다.
‘퍼스트레이디 오너’라는 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퍼스트레이디에게 오너의 영예를 넘겨주지 않았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영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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