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는 그린스펀과 부시의 주도권 싸움의 산물이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하 결정을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과 조지 부시 대통령 당선자와의 기싸움 차원에서분석해 주목을 끈다.
타임스는 지난 3일자에서 “과연 그린스펀이 부시의 친구가 됐는가, 아니면 적이 됐는가”라고 반문했다. 친구가 됐다고 보는 측의 견해는 이렇다. 즉 그린스펀이 미국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부시의 주장에 동의했기 때문에 경제를 살리려 금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임스는 적이 됐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둔다. 즉 그린스펀이 금리를 내림으로써 경제는 부시가 아니라 자기 손에 달려 있음을 만천하에 다시 한번 과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금리인하 결정의 시점을 보면 절묘하다. 이날 부시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 등 경제계 거물 35명을 초청해 경제포럼을 열었다. 겉으론 재계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지만 내심 자신의 감세정책을 추인받는 게 목적이었다. 또 이날은 힐러리 클린턴이 상원의원 선서식을 갖는 등 새 의회가 개원한 날이다.
그린스펀은 바로 이날을 골라 보란듯이 금리를 0.5%포인트나 내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타임스는 그린스펀에 대해 “워싱턴에서 가장 노련한 사람 중의 한 명”이라고 평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행동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따져보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 부시의 오스틴 경제포럼은 금리인하에 밀려 그다지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동시에 미국인들은 “경제는 역시 그린스펀 소관”이라는 믿음을 재차 확인했다.
일부 언론이 이번 금리인하를 ‘선제공격’이라고 부른 데는 두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순수한 의미에서 경제가 불황에 빠지기 전에 되살리려는 기습작전이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부시가 감세정책의 기치를 높이 세우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려는 속셈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린스펀은 금리를 내리는 통화정책만으로도 경기부양 효과를 충분히 이룩할 수 있음을 과시하려 한 셈이다.
당장 민주당은 “금리정책이 성공하면 굳이 부시가 원하는 감세를 추진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상원 민주당의 톰 대슐 원내총무는 “경제학자 대부분이 감세보다 금리인하가 더 즉각적인 경기부양 효과를 발휘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이 주도권 싸움에서 이기면 부시가(家)와의 악연이 되풀이된다. 지난 92년 대선에서 클린턴에게 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그린스펀이 금리를 내리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선거에서 졌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바뀐 게 있다면 그때는 금리를 내리지 않았고, 이번엔 기대 이상으로 내렸다는 점이다.
/ paulk@fnnews.com 곽인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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