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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이후를 생각하자―구조조정부터 마무리를]퇴출 미루면 시장에 짐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1.26 05:41

수정 2014.11.07 16:25


정부,채권단 구조조정 의지가 있을까.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원의 물음이다. 그는 정부와 채권단에는 구조조정 의지가 전혀 없다고 결론짓는다. 영업실적이 부진한데도 워크아웃 기업을 계속 끌고 가고 있는 것이나 현대투신,현대건설,현대전자 등 현대계열사 문제를 근원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의 임기응변식 처방만 내놓은 것이 증거라고 그는 지적한다.

◇구조조정 거북걸음인가=구조조정의 속도가 더디다는 점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토를 달지 않는다. 한국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3일 52개 기업이 퇴출한 이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면서 “과거 대우문제 처리에 1년 6개월을 허비했듯이 이번에는 현대문제에 끌려다니며 구조조정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3개월여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자자들은 ‘워크아웃’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있는 부실기업의 퇴출을 통한 불확실성의 제거를 기대해왔다. 물론 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3년간 구조조정에 매달렸지만 부실기업들은 여전히 살아서 자금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망령노릇을 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워크아웃 담당자는 “원칙대로 하면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90%는 문을 닫아야 하겠지만 시장에 주는 단기 충격을 우려해 채권단이 끌고 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자율적 구조조정의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더디게 된 데는 정부가 경기부양에 나선게 1차적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기가 급격히 하강하자 ‘제한적 경기조절책’을 내놨다. 예산을 상반기에 조기집행하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등의 조치가 포함돼 있다. 이는 시장에서 곧 구조조정 의지의 퇴색으로 받아들여졌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도 한몫을 했다. 정부는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변명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없다. 산업은행이 회사채 80%를 인수하는 제도의 수혜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현대계열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직도 특정기업 지원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을 받는 대목이자 시장원리를 스스로 어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현대전자,현대건설,현대투신의 처리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은 분리매각,감자 후 출자전환,국유화 등의 해법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현대의 주주를 살려주는 처방을 내린 셈이기 때문이다.

자율이라는 이름아래 진행되는 구조조정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라는 반민간기구에 의해 주도된 구조조정협약이 지난해 말로 만료됐다. 구조조정은 채권단간 자율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채권단은 부실기업 퇴출을 통한 부실채권 감축을 꾀하지 않고 부실기업에 산소마스크를 씌워 채권을 회수하는 방안을 선택하고 있다. 워크아웃이 지속되는 이유다.

자율의 폐해는 기업과 워크아웃 협약체결 후 출자전환,이자감면,신규자금지원 등 다양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할 때도 나타난다. 신용채권 금융기관과 담보채권 금융기관간의 극한적인 이해대립으로 쉽게 결론이 나지 못한다. 시중은행 관계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정부가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CRV)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업사정을 모르고 기업정리에 대한 전문성도 결여된 데다 채권회수에만 몰두해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채권금융기관을 CRV로 대체하려는 것은 정부가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라고 삼성경제연구소의 전효찬 박사는 지적했다.

◇어떻게 해야하나=KDI의 임원혁 박사는 “부실대기업을 당장 퇴출시키라는 것은 아니다”면서 “궁극적으로 부실기업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담은 로드 맵(Road Map)이라도 내놔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전자의 예를 들면 반도체 가격하락 요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동성 위기를 주주부담으로 풀지,아니면 납세자 부담으로 풀지를 분명히 해야 하고 납세자 부담으로 풀경우 가산금리(프리미엄)을 매겨야 한다는 논리다. KDI는 기업구조조정 대원칙으로 ▲부실대기업의 감자 후 출자전환을 통한 문제해소 ▲매각추진중인 부실기업은 자산부채이전(P&A)방식 정리 ▲영업실적 부진 워크아웃기업의 청산 등을 제시해놓고 있다.


LG연구원의 오정훈 책임연구원은 “기업 구조조정은 단기에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라면서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벌리기보다는 기존에 만든 정책의 내실을 기하는 한편 금융기관 구조조정 청사진 제시,상반기 중 내부거래 중단 등 경기부양과 무관하면서도 시장원리에 역행하는 정책중지 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john@fnnews.com 박희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