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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경제교실―여성고용]출산―육아비용 국민분담이 합리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1.30 05:42

수정 2014.11.07 16:22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가 탄생했다. 여성 고용 관련 제도 면에서는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 받으면서도 실제 여성 인력활용도는 세계 78위에 불과한 우리의 현실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확대하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당위성을 감안할 때 이번 여성부 출범은 적절한 조치로 평가된다.

사실 한국 기업들의 여성고용 비율이 비슷한 소득 수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낮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이렇게 여성 취업률이 낮다 보니 고급 인력 낭비, 노동력 공급 부족에 따른 임금 상승 등 여러 가지 부작용도 많다. 그러나 기업의 구인 노력뿐 아니라 여성들 자신의 구직 노력도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 현재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만족도가 낮은데다가 육아와 가사문제라는 걸림돌 때문에 일하고 싶어도 일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럼 여성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이 육아 부담을 덜어주면 어떨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성 근로자가 많은 사업장이면 의무적으로 갖추게 되어 있는 탁아시설 보급률이 3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여성 인력의 필요성이 급속히 늘어나는 시대적 흐름을 감안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비용 부담이 기업들로 하여금 여성 인력 고용을 주저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로서는 굳이 남자에 비해 부대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여성을 고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여성 고용 기피 현상은 합리적인 의사결정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여성 근로자들이 성별을 이유로 고용과 승진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 외에도 신체적인 차이에 근거해 여러 가지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생리 휴가나 출산 휴가 같은 유급 휴가와 탁아시설 설치 의무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조항들이 노동시장에서 별로 환영 받지 못하고 오히려 여성 고용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 문제는 노동시장을 통해 이뤄지는 대표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이다. 근로자의 고용 여부를 결정하는 기업은 노동시장의 수요자라 할 수 있고 남녀 예비 취업자들은 공급자 위치에 있다. 잘 알다시피 모든 경제주체들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 싶어한다. 기업이 노동시장에서 보여주는 의사결정 역시 같은 원리를 따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나라 노동법이 요구하는 여성 근로자들을 위한 지원책은 기업의 비용 증가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휴가를 많이 쓰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탁아소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은 그만한 비용을 상쇄할 만큼 우수한 여성 인력이 아니면 고용을 꺼리게 된다. 여성 근로자들은 그 추가비용만큼 불공평한 채용 조건을 강요 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고용에 따르는 비용은 국민 전체가 분담해야

하지만 여성의 취업 문제를 기업단위의 경제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성이 담당하는 출산 기능은 우리 사회를 존속시키는 필수적이면서도 기본적인 역할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성 근로자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생산성과 이익을 내기 위해 출산과 육아활동을 포기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인구 감소, 가계 붕괴라고 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낳게 된다. 이런 점에서 여성 근로자들은 휴가나 탁아시설 비용보다 훨씬중요한 인류의 보존이라는 사회적 이익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이익의 수혜자와 비용 부담자가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이익은 사회 전체가 나눠 가지면서 여성 근로자 고용에 따른 비용은 기업이 부담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은 여성 인력을 채용하지 않으면서 다른 기업들에게 여성 고용을 미루는 업체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즉, 공공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익은 함께 누리면서 비용은 남이 부담하도록 미루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여성고용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모두들 동감하지만 실제로 여성 근로자를 채용할 때는 주저하게 된다.

따라서 여성 고용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비용을 기업에게만 부담시킬 것이 아니라 수혜 당사자인 국민 전체가 분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즉, 국민의 대리인인 정부가 여성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들에게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여성 고용에 따른 비용을 국가 예산을 통해 지원함으로써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둘러싼 비용-편익(cost-benefit) 구조의 왜곡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경제활동인구란 물리적으로 노동이 가능한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 의사를 가진 사람의 수를 뜻하며 2000년의 여성 경제활동인구 비중이 48.3%라는 것은 15세 이상 전체 여성 중 48.3%가 취업을 원한다는 의미이다. (이 숫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1999년에 47%까지 낮아졌으나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도시지역의 여성 경제활동인구 증가가 두드러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도시지역 남자 경제활동인구의 비중이 낮아진 것은 남성들의 취학기간이 늘어나고 퇴직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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