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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이후를 생각하자―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자]´투명경영´소유구조 개선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1.30 05:43

수정 2014.11.07 16:21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제는 내실화와 관행의 정착이 필요한 때다.”

지난 97년 금융외환위기이후 한국 경제는 놀라운 변화를 거듭해왔다. 특히 외환위기를 초래한 기업 및 금융거래의 불투명성을 제거하기 위한 각종 시책의 도입은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한국 정부가 지난 99년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한 기업지배구조개선 모범규준을 받아들여 기업 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사외이사제도의 도입 등은 대표적 사례다. 이 모든 것은 한국 경제가 개방과 자유경쟁으로 압축되는 세계화의 추세에 동참, 세계 경제의 주류로서 역할을 하고 또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기 위한 필수조치로 받아들여졌기에 가능했다.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란=한국 정부는 한국 경제의 구제개혁을 추진하면서 줄곧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합치를 강조해왔다.
재정경제부의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스탠더드란 시장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준칙”이라고 규정하고 “OECD가 정한 기업지배구조모범규준을 비롯한 서방선진공업국(G7)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공유하는 개방과 자유경쟁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란 기업 경영이나 정부의 금융감독에서의 투명성과 공정성·효율성의 제고를 위한 잣대”라고 규정했다.

사외이사나 집단소송제·집중투표제의 도입 등을 통한 기업지배구조개선도 역시 국제적인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정보의 효율적 공개와 공유를 통해 신속하고 원활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경영효율을 높이고 주주(국민)이익을 높이자는 것으로 귀착된다.

◇어떻게 변하고 있나=전문가들은 “본받을 만한 제도는 다 도입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상장법인들의 사외이사제가 의무화됐고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는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이제는 우리 토양에 맞도록 ‘착근’하는 일만 남았다. 금융연구원의 손상호 박사도 “은행퇴출기준이나 건전성평가 기준 등은 외형적으로 선진국과 대동소이할 정도가 됐다”고 평가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선진국과 비교해 제도적으로 뒤질 만한 것은 거의 없다”면서 “앞으로 시행과정에서 모자라는 인프라 구축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도상의 글로벌화는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우선 감사인들의 자세가 180도 바뀌었다. 분식회계를 했던 대우의 몰락은 회계법인의 동반몰락을 초래했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리스크가 큰 법인 감사는 전담부서가 감사를 수행하는 것은 물론 최고 경영진에게도 보고를 하는 등 감사가 매우 엄격해졌다”고 털어놨다.

재벌 총수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업 경영정보의 공개 관행도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SK의 사외이사는 지난 98년 선임이후 계열사의 기업어음(CP)이나 주식매입 등 계열사 지원에 대해 제동을 걸어 규정화했고 사옥이전시 건물가격 깎기,건설사 선정 공정성 제고 등을 꼼꼼히 살피기도 했다. SK텔레콤 사외이사인 김대식 한양대교수는 “SK사외이사는 계열사 내부거래시 사전승인권을 확보, 강력한 힘을 발휘, 기업 지배구조개선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 설 직후부터 유럽과 미국 등을 돌며 기업 경영설명회를 갖고 있는 것은 경영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삼성전자 김광태 이사는 “이제는 글로벌한 회계기준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기업경영을 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지적하고 “삼성전자는 주주들의 문의에 응답하는 것은 물론 정규적으로 기업설명회와 브리핑을 갖고 있으며 지난 해부터는 제품별 영업이익 정보도 주주들에게 제공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제는 전근대적인 기업의 소유구조와 부실이다=중앙대 법대 서헌제 교수는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해도 소유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단언했다. 서교수는 “총수 등 대주주는 계열사를 통해 기업을 장악하고 있고 또 사외이사도 그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게 한국적 현실”이라며 “대주주 소유분산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임영재 박사 역시 재벌 총수의 지분분산을 선결과제로 지적했다.
한국증권연구원의 정윤모 수석연구원도 “우리나라 대주주들은 기업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고 있다”면서 “지분만큼 이익과 위험을 분담하는 관행의 정착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센터장은 “금융기관의 여신 및 감독의 글로벌 스탠더드 합치화도 이뤄지고 있지만 기업부실로 인해 제도를 엄격히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채권금융기관을 통한 기업감독에 의해 투명성과 공정성·효율성을 높이려면 기업부실부터 먼저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 john@fnnews.com 박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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