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회생의 조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2.25 05:50

수정 2014.11.07 15:51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경제 성장률은 9%를 웃돌았다.99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무려 10.7%에 달했다. 한동안 과열경기를 걱정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정부는 금융, 기업, 노동, 공공부문의 구조조정만이 외환,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가 살 길이라고 강도 높게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4·4분기 부터 경기가 급속한 내림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 정부는 ‘제한적’인 경기부양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했다.

이때문에 구조조정이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선(先)구조조정, 후(後)경기부양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는 경기부양은 구조조정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4대부문 개혁도 2월말까지 마무리 짓고 앞으로는 시장기능에 따른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주도의 개혁은 끝났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모든 개혁은 끝났다는 선언 일지도 모른다.

지나친 경기부양 우려

정부는 지난 3년동안 추진해온 4대부문 개혁이 비교적 성공적 이었다고 자평한다. 게다가 그동안 계속된 개혁으로 국민의 개혁피로 증후군이 나타나는 것도 정부주도의 개혁을 중단 하는 원인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국민의 정부는 임기말까지 중단 없는 개혁을 밀고 나가겠다는 허장성세를 부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정부는 아직까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금융, 기업 구조조정이 금융 불안 및 경기침체의 원인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만기가 돌아오는 비우량기업의 회사채를 신속 인수토록 했다.또 신용 보증한도를 지난해보다 21조원 늘려서 자금이 비우량기업으로 흐르도록 유도 했다. 이런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기업, 금융구조조정을 후퇴, 지연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비우량기업을 퇴출시키지 않고 살리려 하다가는 우량기업도 금융경색으로 불이익을 당한다. 이들 비우량기업들은 실제로 돈 벌어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시적으로 대출을 확대해 주더라도 빚만 늘어날 뿐 비우량기업이 우량기업이 될수는 없는 것같다. 결국 일시적으로 부실기업들을 연명시키기 위해서 정부가 자금시장에 개입하고 자금을 배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부는 올해 재정지출의 3분의2를 상반기에 조기집행 하고 한국은행도 콜금리를 인하하는 등 신축적인 통화관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정책 조치에 힘 입어 올해들어 자금경색이 어느정도 풀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가가 하락을 멈추고 채권시장에서 BBB 신용 등급의 회사채도 차환발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자금시장의 숨통이 트이자 정부는1·4분기 중 경기가 바닥을 치고 하반기에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을 내놓았다. 올해의 경기전망을 5∼6%의 성장, 3% 실업율, 3% 물가상승율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가 100만명에 접근하며 실업율도 5%대에 이를 전망이다. 고용불안이 또 다시 사회문제로 떠오를 우려가 크다. 미국경제가 연착륙하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도 예상보다 악화될 수 있다.

정부가 침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외환,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회생을 위해서 구조조정을 착실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1·4분기에 경기가 저점을 지나는지 여부는 확실치도 않고 사실상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전망을 내놓는 것은 정부가 아직도 우리 경제의 문제를 구조적이라기 보다 경기순환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저 막힌 곳에 자금을 퍼붓고 금리나 내리는 등 경기부양책을 쓰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 같다.

구조개혁 중단돼서는 안돼

최근에 산업생산 활동이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올해의 한국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침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같은 경기 침체는 무엇보다도 구조조정이 부진하기 때문이다.구조조정을 더욱 착실하게 추진하는 것이 자금시장을 활성화 하고 경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본다.섣부른 경기부양과 낙관론은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뿐 경제를 근본적으로 회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 금융 등 경제의 펀더멘털이 변하지 않았는데 정부의 인위적인 자금배분에 힘입어 채권 및 주가가 일시적으로 활기를 띠는 것에 너무 낙관할 필요는 없다.그 보다 자금시장의 숨통이 트이고 경기가 다소 나아지는 동안에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상시구조조정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개혁의 중단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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