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임 회장단 만찬장.
지난 1월8일 이후 오랜만에 재계 모임에 모습을 드러낸 이건희 삼성회장은 이날 삼성의 후계구도와 관련해 ‘공식 발언’을 했다.“장남 이재용씨가 언제쯤 삼성 경영에 참여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올해부터 나올 겁니다”라고 잘라 말하고는 만찬장을 떠났다.
이 회장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이재용씨의 경영 참여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다음날 이 소식은 언론의 핫뉴스로 등장했지만 정작 삼성 내부는 조용하기만 했다.
◇실세급 전문경영인 다수 포진, 회장은 ‘최고 경영 조언자’=이 회장은 지난 68년 동양방송 이사로 취임한 뒤 선친 이병철 회장과 장인인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장인)으로부터 20년동안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고 87년 삼성 회장에 올랐다.삼성 관계자들은 이 회장이 거쳐온 것처럼 이재용씨의 경영수업이 본격화된다는 것 말고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고한 삼성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삼성의 대주주로서, 경영인으로서 미래 전략과 경영의 큰 줄기에 대한 조언자 역을 수행한다.일선의 전문경영인들이 충분한 검토와 토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은 거의 그대로 존중한다.여느 그룹처럼 회장이 직접 나서는 진두지휘하고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지난 97년말 IMF위기가 막 발발했을 때 이 회장이 당시 이학수 비서실장(현 구조조정본부장)을 불렀다.“계열사 경영실사 작업을 해 보세요.전 계열사와 전 사업부를 정밀진단해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가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이 어떤 것들인지 알아 보세요.”
비서실 재무팀에서 그룹의 구조적 문제와 재무상태를 분석한 보고서는 곧바로 이학수 본부장에게 브리핑됐다.이어 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 경영진으로 구성된 구조조정위원회와 사장단 회의의 동의, 계열사별 사장단과 임원 회의를 거쳐 그룹의 구조조정 밑그림이 결정됐다.이 회장은 이학수 본부장의 브리핑을 받고 구조조정을 시작할 것을 지시했다.
삼성은 주력업종을 전자, 금융과 무역, 서비스 등 3∼4개로 압축하고 28개 계열사를 정리했다.주력업종 내에서도 한계 사업부문은 과감하게 매각 또는 분사했다.인력조정도 뒤따라 지난 97년말 16만7000여명이던 인력을 99년말 11만3000명으로 크게 줄였다.
이같은 구조조정을 진행한 지 2년여만에 삼성의 주식 시가 총액(2000년 6월 기준)은 LG?^현대?^SK 총액의 80%선을 넘어서게 됐다.이 기간동안 이회장이 한 역할은 기회있을 때마다 전문경영인들에게 “경쟁력이 강한 기업, 고객과 주주, 경쟁자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라”고 주문하는 것이었다.“전자·금융·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기술과 사업역량을 갖춘 일류 기업군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지금 닦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삼성 관계자는 전한다.
삼성 관계자들은 “과묵하지만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4∼5시간을 그냥 이어갈 정도로 열정적인 이 회장은 전문 경영인을 독려하는 ‘최고 경영 조언자’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삼성의 2인자군(群)=삼성은 재계에서 ‘인재사관학교’로 불릴만큼 두꺼운 전문경영진이 포진해있다.삼성의 인재철학은 ‘불신물용 용인필신(不信勿用 用人必信)’이라는 말로 대표된다.믿지못하면 아예 쓰지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믿고 맡긴다는 것이다.그래서 삼성에는 일단 발탁되면 스타로 부상하거나 장수하는 경영인이 많다.
삼성은 재계에서 가장 먼저 공채 제도를 도입, 공채 출신들이 대거 최고경영자(CEO)자리에 올라있다.이건희 회장은 실력있는 비공채 출신들도 중용했다.그는 공채 출신을 우대하면서도 다양하게 변하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를 많이 영입했다.현재 삼성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가운데 공채와 비공채 출신 비율은 2대1 정도.지난 96년 1대1에 비하면 공채 비율이 다소 올라간 편이다.
삼성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그룹 2인자군으로 꼽히는 이수빈 생명회장, 현명관 물산회장, 윤종용 전자부회장과 이학수 구조본부장 등 8명이 참여하는 구조조정위원회.이곳에서 그룹 주요 현안과 미래 전략이 결정된다.매주 수요일 열리는 간담회형식의 계열사 사장단 회의(수요회)도 빼놓을 수 없는 그룹 현안 토론장이다.이 2곳 모두 이건희 회장은 참석하지 않지만 이학수 본부장이 회의 결정사항을 수시로 회장에게 보고한다.이 회장이 이 결정을 뒤집은 일은 거의 없다.구조본은 위원회의 실무기구다.
구조위 위원장은 이수빈 회장이 맡고 있다.창업주를 22년동안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소병해 전 비서실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금융 소그룹의 최고경영자로 권한을 행사한다.그는 삼성 공채 6기로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65년 제일제당에 입사했다.38세에 제일모직 대표에 올랐던 대표적 삼성맨으로 입사 초기부터 동기생 가운데 선두를 달렸다.이수빈 회장과 이필곤(전 삼성물산 부회장, 전 서울시 부시장), 이대원 삼성 미래전략위원회 부회장은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공채 동기(6기)로 다같이 재무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6기 전성시대 열었던 인물이다.이 가운데 현명관 회장은 이필곤 전 부회장과 서울고 동기. 이건희 회장의 고교 선배이기도 한 이수빈 생명회장은 모직·제당·정밀·생명·증권 대표이사를 두루 지낸데다 비서실장을 오래맡아 그룹 사정에 밝다.
5일 주총에서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한 현명관 회장은 삼성의 톱 경영인 가운데 보기드문 공무원 출신이다.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66년 행시에 합격, 감사원에서 근무하다 지난 78년 전주제지에 관리부장으로 입사했다.호텔신라 대표와 삼성건설 사장 등을 거쳐 93년 비서실장에 발탁됐다.치밀하며 합리적인 업무 스타일로 호텔신라 재직때는 새벽에 출근해 호텔 이곳저곳을 점검했을 정도로 부지런하다.그는 정·재·관계 인사와 교분이 넓어 삼성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해결사역도 잘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윤종용 전자부회장(공채 7기)은 경북대 사대부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69년 물산에서 전자로 배치된 이후 한번도 전자를 떠나본 적이 없는 정통 삼성맨이자 전자맨이다.주력 중 주력인 전자의 총사령관으로 반도체와 디지털미디어, 정보통신사업에서 삼성을 세계 초일류로 키우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그는 메모광으로 불릴 정도로 성격이 꼼꼼하다.4년전 쯤 이건희 회장이 느닷없이 “80년대에 전자에 있을 당시 내렸던 100여 항목의 지시사항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진척사항 알아보라”고 지시했을 때 윤 부회장이 오래된 메모자료에서 90개 이상을 찾아 보고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삼성 비서실의 형태와 역할을 이어받은 구조조정본부의 사령탑으로 삼성 실력자로 떠오른 인물이 공채 12기 출신의 이학수 구조본 사장(부산상고-고려대 상학)이다.그는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로 통한다.이재용씨의 후계자 수업을 막후에서 돕고 있다.대표적인 재무통으로 7년7개월 동안 비서실 재무팀장을 지내 최장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30년 삼성 생활중 절반 가까이를 비서실에서 근무(구조조정본부 근무기간 포함)한 그는 삼성 사관학교로 불린 제일모직 경리과장, 관리부장을 거치면서 재무·회계 관련 서적을 섭렵했다.
치밀한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82년 비서실 팀장에 임명된 그는 92년 비서실 차장(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오너곁을 지켜왔다.삼성화재와 제일제당 대표를 거쳐 49세이던 지난 95년말 사장으로 발탁 승진한 그는 96년 친정이나 다름없는 비서실 복귀했다.그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신뢰는 돈독하다.지난해 초 이회장이 비(非)전자 계열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금융계열사 사장들에게 “이학수 사장이 삼성화재 재직할 때의 경영기법을 배우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삼성은 계열사 회장과 부회장급의 소그룹 최고경영자와 각 계열사 전문경영진이 권한과 책임, 자율성을 가지고 그룹을 이끌어가는 조화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shkim2@fnnews.com 김수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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