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농산물 교역전쟁] WTO 협상 쟁점과 정부대책



지난해 첫 스타트를 끊었던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협상이 곧 본 궤도에 오른다. 각 회원국의 협상 제안서는 모두 나왔고 토론까지 마무리됐다. 이제부터는 이를 바탕으로 본 협상이 시작된다. 2단계 협상에서는 특히 관세, 시장접근물량(TRQ) 관리 등 10개 의제를 둘러싸고 농산물 수출국과 수입국간 대립이 한층 날카로워질 전망이다.

본격화된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협상은 갈수록 높아지는 농산물 개방의 파고를 실감케 한다.이는 자칫 벼랑끝으로 몰릴 수도 있는 우리 농어업의 절박한 처지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지표이자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주문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WTO에 제출한 농산물협상 제안서에서 크게 두가지 입장을 표명했다.2004년 이후에도 쌀의 관세화를 유지하겠다는 것과 농산물에 대해서는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그러나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갈길이 만만치 않다.

WTO농산물 무역협정의 쟁점과 전망, 정부의 대응방안 등을 자세히 짚어본다.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을 관세화한 UR 농산물협상은 국내 농업에 어떤 변화를 가졌왔을까.

일각에서는 UR협상이 종결됐을 때 국내 농업기반이 붕괴될 것으로 우려했으나 실제 그렇게 까지 급박하게 상황이 진척되지는 않았다.그러나 부정적 영향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UR이후 농산물 가격상승에 비해 농업경영비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농업수익구조 악화와 농산물 수출 둔화 등도 UR가 불러온 여파다.

WTO농산물 협상은 이런 징후들을 급격히 확산시켜 농업을 ‘회생불능의 상태’로 빠뜨릴 수도 있다.반면 협상력을 발휘해 이익을 최대한 증대시키면서 농업구조조정을 촉진하면 튼실한 경쟁력을 갖추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국내 농업은 지금 중요한 시험대에 서 있는 셈이다.


◇떠오른 쟁점은=현재 WTO협상의 주요 쟁점은 크게 다섯가지로 나뉜다.첫째가 시장개방분야로 관세의 대폭 삭감여부가 최대 핵심이다.미국과 케언즈그룹 등 농산물 수출국들은 농산물 관세가 여전히 높다며 관세를 대폭 깎겠다는 입장이다.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유럽연합(EU) 등 수입국들은 회원국의 농업에 치명타를 안길 우려가 높은 만큼 소폭 관세 인하가 바람직하다고 맞서고 있다.

농림부 김종철 국제협력과 서기관은 “특히 핵심주곡(쌀)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UR협상시 쌀은 2004년까지 10년간 관세화를 유예키로 했는데 이후에도 이 조치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장접근확대를 위해 시장접근물량(TRQ)을 늘리고,무역을 제한 또는 왜곡하는 국영무역 등 수입관리제도를 철폐하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수출국 주장도 논란거리다.수입국들은 이에 대해 “국내외 가격차로 인한 시장교란을 막기 위해서는 융통성있는 수입관리제도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특별긴급관세제도 역시 수입국은 수입물량의 증가에 따른 충격을 막기 위해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수출국은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둘째는 국내보조분야.수출국은 허용보조의 요건이 느슨하다며 강화를,수입국은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또 수출국은 총액감축방식이 아닌 품목별 감축방식의 도입과 감축폭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으나 수입국은 큰 폭의 감축에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셋째,수출경쟁분야도 만만치 않다.미국과 케언즈그룹 국가는 수출보조의 철폐를 주장하지만 수출보조를 많이 주고 있는 EU는 반대하고 있다.일본도 신중한 접근론을 펼치고 있다.

넷째는 농업의 비교역적·다원적 기능에 대한 시각차.우리나라를 주축으로 일본, EU, 스위스, 노르웨이, 모리셔스와 동구권이 지지하는 입장이다.식량공급외에 환경보전, 식량안보 등 다양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농업에 대한 지원 감축과 무역자유화를 방해하는 논리로 쓰여서는 안된다는 게 핵심이다.

이밖에 미국측의 유전자변형농산물(GMO) 규제 반대, 개도국 우대의 확대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전망과 향후 대책=WTO협상이 본궤도에 오른 것에 발맞춰 주요국의 움직임도 빨라졌다.미국은 지난 96년 농업법 제정시 가격지지를 없애고 생산중립적인 직접지불제도로 바꿨다.WTO농업협정상 허용보조요건을 충족한 것.미국은 포괄적 협상보다는 농업·서비스중심의 제한된 분야의 협상을 선호하고 있다.특히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를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케언즈그룹도 강경하다.UR협상의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획기적 조치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관세 및 보조금의 대폭 감축, 수출신용 규제, 수출보조 철페 등을 요구하고 있다.WTO협상에서 우리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형성, 구축하고 있는 일본은 99년 4월 쌀을 관세화해 협상 부담을 줄였다.

EU는 취약한 농업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을 피하고 있다.동구권 가입으로 예상되는 재정부담을 줄이고 가격지지를 축소, 새로운 협상에 대비하고 있다.

이미 98년 4월 ‘차기 농산물협상대책단’을 만들어 대응방안을 추진한 바 있는 우리 정부는 입장이 비슷한 국가들과의 공조체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이를 위해 ▲한·일 농업각료회의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담)+3 농업각료회의 ▲31차 유엔식량농업기구(FAO)총회 참가 등 전방위 외교에 나설 계획이다.수입국간 공조도 최대한 꾀하기로 했다.이달 28일 모리셔스에서 열리는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에 대한 2차 국제회의’를 활용한다는 복안을 세웠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임송수 연구위원은 “국내보조의 경우 추가개혁을 고집하는 수출국과 농정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고 맞서는 수입국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며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뿐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수출국에 농업정책의 효과와 기능 등에 대한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임 연구위원은 또 “국내보조의 감축 속도와 폭을 균형적으로 접근해 조절하고, 농정의 틀을 다시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lmj@fnnews.com 이민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