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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바로 압시다] 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논란


서울 강남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6시간20분 가량을 달리다보니 진돗개로 유명한 ‘어서오세요 진도입니다’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맨끝인 ‘땅끝 마을’보다 더 먼 것을 보니 섬은 분명했지만 육지와 다를 게 없었다. 계절은 5월인데도 길거리에서 뿜어대는 아지랑이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도시 한복판이라고 서울 변두리의 동네보다도 작아 보이는 진도. 멀리 구름과 맞다아 있는 산줄기는 마을의 뒷동산처럼 낮았다. 마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통해 관광도시로 탈바꿈한 영국의 셸라필드 원전단지와 지형조건이 흡사했다. 농업이 1차산업인 진도는 정부의 폐기물 처분장 유치 조건(임해지역 46개 시·군)에 적합한 지역 중 하나. 그러나 인구 4만명의 조그마한 동네는 폐기물 처분장 유치를 놓고 ‘지역이 황폐화된다’고 주장하는 반대파와 ‘지역이 발전될 것’ 이라는 찬성파로 양분돼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양쪽 모두 진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역발전을 위해 찬성하고,지역황폐화가 우려돼 반대한다는 점이다. 주민들의 엇갈린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정동조 진도발전연구회 회장(45)은 “일본 로카쇼무라에 다녀왔는데 도저히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버림받은 땅이 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계기로 관광명소가 됐다”면서 “우리 지역은 로카쇼무라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발전론을 제시했다. 반면,주영호 진도환경운동협의회 집행위원장(47)은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진도에 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온다는 것은 진도를 황폐화시키려는 것과 같다”며 “해상국립공원에 맞게 관광도시로 육성해야 한다”고 반대론을 폈다.

◇자치단체들 뭐하나=“내가 있는 동안은 폐기물을 절대 가져오지 않는다.” “그 이상은 묻지 마라,더이상 할 얘기가 없다.” 진도군수는 인터뷰를 하러간 기자에게 화부터 냈다. 기자의 계속되는 질문에 군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죄없는 비서진들에게 “누가 들여보내라고 했냐”며 마구 화를 냈다. 잠시 후 밖에 있는 군수에게 질문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집무실로 들어가면서 “기사 잘못 나오면 각오하라”고 소리쳤다.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진 군수는 당초 방사성폐기물 유치에 관심을 보였으나,최근들어 태도가 돌변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영광 군수는 한술 더 떴다. 기자가 1주일 전에 인터뷰 협조를 요청했으나,군수는 오후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렵게 만난 부군수도 말문을 닫았다.

◇6월 말까지 자치단체들 공모할까=결론부터 말하면 정부 혼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위기다. 내년에 치를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장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다. 자칫 지역민들의 민심을 잘못 파악했다가는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오는 6월 말 마감인 2차 폐기물 처분장 공모시한을 40여일 앞두고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은 태연하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 말까지인 1차 공모에서 보여줬듯이 강원도 양양군과 충남 보령시,전남 영광군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유치를 강력히 희망했으나 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영광군 폐기물 처분장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영두)는 대안으로 전체 유권자 5만여명 중 2만5000여명의 동의서명을 받아내면 군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추진위는 이달 말까지 목표로 한 마무리 서명운동(현재 2만1000여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추진위는 특히 이번에도 자치단체가 무성의한 태도를 보일 경우 군민들이 직접 나서 정부에 유치 희망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2차 공모에도 자치단체 불참하면=정부는 지난 2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후보지역으로 고시한 임해지역 46개 자치단체 가운데 한군데도 유치 응모를 하지 않자 오는 6월 말까지 공모기간을 연장했다. 정부는 2차 공모도 무산될 경우 지역주민,자치단체 등과 함께 충분한 협의를 거쳐 후보지를 물색하는 ‘사업자주도 선정방식’으로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사업자주도 방식은 일방적으로 부지를 지정하는 것과 달리 해당 지자체와 계속적인 협의를 거쳐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부지를 확보한다는 기본원칙에 입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업자주도 방식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현재 전북 고창,전남 영광 등 처분장 유치를 지방의회에 청원한 지역에서도 주민간,주민과 지방의회,자치단체 사이에 찬반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후보지를 물색할 경우 이미 안면도,굴업도 등 실패 전례가 있어 또 한 차례의 홍역이 예상된다.

◇대안은 없나=정치와 경제가 맞물려 있는 국내 상황에서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단언한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가능성 있는 지자체장에 메시지를 전달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프랑스와 스웨덴 등은 이 사업의 중차대함을 인식해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 해결했다. 이 경우는 특단의 조치다.
대통령이 나서야 할 상황까지 간다면 현정부의 집권 능력에 흠집이 생길 수 있어 현재로선 보고선에서 그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의 최종 목적이 국가의 안위와 번영,국민의 권익과 행복보장 등에 있다고 볼 때 정부의 빠른 대안이 필요하다.

특히 자치단체장들도 선거만 의식하지 말고 옳다고 판단되는 일에 대해서는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국가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khkim@fnnews.com 김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