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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심리다(하)] 쌈지돈 돌아야 경기가 산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5.25 06:14

수정 2014.11.07 14:18


빈곤한 시대에 압축성장과정을 겪어온 한국인들이 아직까지 껴안고 살고 있는 그릇된 경제지식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저축이 미덕이다’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과소비와 사치는 무조건 나쁘다’라는 것이다.

소비는 경제생활의 최종 목표다. 사람들은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때 생존을 이어가고 또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소비행위는 경제주체, 특히 개인과 가계가 추구하는 경제행위의 완결판이며 결코 악덕으로 몰리거나 기피·질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소비는 또한 우리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귀중한 동인이기도 하다.
소위 경기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소비가 좌우한다. 미국에서도 가장 예민하게 관찰되는 경기관련 지표는 소비관련 지표다.소비가 경기를 좌우하는 경로를 요약하면 이렇다. 소비가 늘면 물건이 잘 팔리니 기업들이 더 많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한다.

투자는 새로운 물품과 서비스를 필요로 하기에 또다른 수요를 창출하고 그 과정에서 경제주체들의 소득이 늘어 경제는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이다. 수요측면에서 볼 때 소비는 투자와 더불어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두개의 큰 바퀴인 셈이다. 민간소비지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으로 소비가 오히려 수출이나 투자보다 경기를 좌우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

이처럼 중요한 민간소비지출이 지난 1·4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0.8% 증가하는데 그쳤다. 국내총생산이 3.7% 증가한 것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증가율이다. 이에따라 민간소비지출의 국내총생산에 대한 성장기여율도 2000년중 22.9%에서 1·4분기에는 13.6%로 낮아졌다. 국내총생산에서 민간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4분기 54.4%에서 지난 1·4분기에는 52.9%로 떨어졌다.최근 경기 침체에 대한 상당한 원인이 내수침체, 그것도 민간소비지출의 침체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외환위기 이후 소비지출의 진폭이 커져서 경기안정화에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대기업의 투자지출 행태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면서 우리경제가 급속한 경기과열과 경기냉각을 반복하는 냄비경제가 됐듯이 이제 소비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긍희 한국은행 조사역은 “구조조정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에 소비의 변동성이 확대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과거에는 경기가 조금 나빠져도 소비지출을 그렇게 민감하게 줄이지 않았으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이 실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한 우리 국민들이 이제 경제가 조금 불안해진다는 조짐만 보여도 소비지출을 과도하게 줄이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행위가 이제 과거의 소득이 아니라 미래의 기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따라서 경제 불안심리가 팽배해지면 소비수요가 냉각되어 경제운용에 추가적인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구도가 정착되고 있다.

정책당국은 소비수요를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는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사회도 이제 ‘때로는 소비가 미덕이다’는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정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득계층별로 볼때 고소득층의 경기변동에 따른 소비진폭이 저소득층보다 크며 다른 계층의 소비변화에 대해 선행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경기침체기에는 고소득층의 소비를 오히려 부추켜 ‘고소득층 소비증가→생산증가→고용증가→저소득층구매력 상승→소비확산→경기회복’ 이라는 선순환 관계가 정착될 수 있다. 고소득층의 소비를 ‘위화감을 일으키는 과소비’니 ‘호화사치’로 비난하는 사회적 정서가 생성되면 이같은 선순환이 일어날 수 없다. 고소득층은 사치품이나 고가품이외에는 소비를 늘릴 도리가 없다.
건전한 가계수지가 유지되는 한, 그리고 나라 전체의 경상수지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펑펑 쓰는 일을 비난하거나 억제할 것이 아니다. 과소비도 합리적이라면 좋은 것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침체기에는 더욱 그렇다.

/우원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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