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한국 금융시장의 과제] “직접금융 키워야 한국경제 산다”

임대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5.30 06:16

수정 2014.11.07 14:13


■로버트 글라우버 미국 증권업협회장 ―한문수 금감원 상임고문 대담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세계은행과 함께 구성한 국제자문단(IAB)의 일원으로 방한한 로버트 글라우버(Robert Glauber) 전미 증권업협회(NASD) 회장은 국내에서의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본지와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그는 과거 미 재무부 차관(89∼92년)을 지낸 경력의 소유자답게 시장 자율경쟁체제를 유난히 강조했다. 본지의 주선으로 이뤄진 한문수 금융감독원 상임고문과의 대담에서도 그는 증권시장과 코스닥, 선물시장 등 이른바 3대 증권시장의 통합은 경쟁체제를 깨뜨리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글라우버 회장은 또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직접금융시장을 키워 기업들의 은행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한문수 금감원 상임고문과 글라우버 회장간 대담내용을 지상중계한다.

▲한문수고문(이하 한고문)=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국내 신문에 회장의 대담기사가 실린 적이 있더군요.

▲글라우버회장=알고 있었습니다.

▲한고문=기사는 보셨습니까.

▲글라우버회장=인터뷰는 했지만 바쁜 일정때문에 기사와 사진은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보니 사진이 마치 밥을 많이 먹은 어린애처럼 나왔습니다.(웃음) 사진이 무척 재미있게 실렸습니다.

▲글라우버회장=이 신문을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미국에 가져가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고문=물론입니다. 한국의 증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라우버회장=한국시장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멉니다. 예전에는 한국증시도 뉴욕증시처럼 변동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증시가)미국보다 변동이 더 심해졌습니다.

▲한고문=그렇다면 한국증시가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라우버회장=한국증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외국 투자자들이 들어와야 합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유인책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투기성 단기투자(데이트레이딩) 성격의 자본이 유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한국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자본이 들어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시장에 대해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선 시장의 투명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여기에는 기업정보가 더 많이 공개되어야 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좀 더 정직해야 하고 또 확실성도 보여줘야 합니다. 즉 시장이 더 개방돼야 하고 투명성도 더 높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시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한고문=최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증권시장과 코스닥, 선물시장 등이 나누어져 있어 힘이 분산되고 있다는 판단하에 이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들 시장의 통합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글라우버회장=증권관련 시장이 통합되는 것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고 각종 전문기술과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요. 유럽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유럽은 국가 수는 많지만 증시관련 시장은 3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증권시장의 단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이들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정보와 기술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들 시장은 서로 나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규모의 경제나 정보공유는 어렵겠지만 반대로 시장이 분리되어 있으면 서로 경쟁체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경쟁체제에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고 상호간 건전한 경쟁을 통해 이득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경쟁체제의 장점을 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국증권시장은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시장에서 상호 경쟁하듯 증권시장도 상호 경쟁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증권시장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한고문=미국 경기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라우버 회장=올해 미국 경제가 1% 성장할지 5% 성장할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보다 성장이 많이 둔화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마이너스 성장은 아니기때문에 불황기에 접어들었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업지출과 투자가 줄어 정보기술(IT)산업이 위축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추세때문에 흔히들 미국경제가 불황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들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성급한 판단입니다. 소비지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증시를 보면 미국경기의 호·불황을 가늠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증시만으로 미국경기의 앞날을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미국민들이 호황기때의 소비수준을 회복할 수 있느냐가 경기 회복의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고문=한국경제로 관심을 돌려보죠. 현재 한국 금융시장의 가장 큰 병폐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글라우버회장=한국 금융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들이 은행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직접금융시장을 더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기업들이 자금의 50%를 주식시장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25%는 회사채에 의존하고 있죠. 25%만이 은행대출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75%이상을 은행융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에 대한 비중은 10%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정치적 입김이 개입될 여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행은 개발독재시대에는 실효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당연히 금융관행도 바뀌어야 합니다. 증권시장은 은행보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정확합니다. 따라서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본배분은 은행보다 효율적입니다. 직접금융시장을 위주로 자금이 조달되면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경제의 기초가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시장경제가 정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이 바뀌려면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를 결심했던 정도의 용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금융관행은 바뀌기 어렵습니다.

▲한고문=일본이 대표적인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글라우버회장=그렇습니다. 일본경제는 이런 관행을 고치지 못해 아직도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은행들의 부실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조차 말하길 꺼려할 정도입니다.

▲한고문=그 해결책이 직접금융시장 활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까.

▲글라우버회장=그렇게 생각합니다. 90년 이후 10년동안 세계 자본시장 규모는 3배나 증가했습니다. 이제 직접금융시장의 활성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한국도 여기에 동참해야 하고 결국에는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고문=부실자산 처리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라우버회장=맞습니다. 과거 미국이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부동산전담은행(S&L)의 부실처리가 지연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S&L은 150억달러 정도면 부실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처리가 8년간 지연되면서 무려 175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한고문=기업에 대한 정책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라우버회장=그렇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큰 회사의 사장이라고 해도 자기 회사의 존망을 예측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그만큼 다변화되고 다양화됐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을 통한 고용창출보다는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서는 신용대출보다는 근본적으로 직접금융시장을 활성화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고문=아시아에서 금융위기는 재발하지 않을까요.

▲글라우버회장=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과거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5개국에서 빠져나간 돈은 1100억달러 정도였고 이로인해 외환위기가 시작됐습니다. 이 정도의 규모는 당시 5개국 외환보유액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았고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수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돈이 빠져나가자 이들 5개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고문=그런 면에서 보면 거시지표와 금융위기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거시지표가 좋아도 언제든지 금융위기는 올 수 있다고 봅니다.

▲글라우버회장=결론은 직접금융시장을 활성화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이 투명해야 합니다. 회계나 투자관련 시장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니다. 여기에 금융감독기관도 선진화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기관의 정치적 중립입니다. 감독기관장의 임기가 확실하게 보장돼야 가능합니다.

▲한고문=마지막으로 한국의 경제인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십시오.

▲글라우버회장=한국의 경제규모나 인적자원을 볼 때 얼마든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은 후진적 금융구조가 아직까지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행이 지속되는 것은 정치가나 은행원, 관료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진금융구조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이들 기득권 세력을 누르고 얼마나 개혁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한고문=오랜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글라우버회장=감사합니다.

/정리=임대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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