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fn프로우먼]이영심 삼영무역 사장―국내외 오색 도자기 돌풍 일으켜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6.28 06:24

수정 2014.11.07 13:44


“비록 도자기에 관해 프로페셔널이라고 얘기할순 없지만 도자기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도자기를 비롯한 주방용품을 수입·판매하는 삼영무역의 이영심 사장(51)은 먼저 이렇게 말을 꺼냈다.며칠 전부터 “일본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랴, 수입물품의 통관문제로 고심하랴 골치가 아프다”며 머리에 하얀 압박붕대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이 사업에 뛰어든 지도 벌써 26년.초기에 비하면 사업여건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제’의 수입에 대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때로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사장은 “일본제품이긴 하지만 고가제품이 아니라 일반 서민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국내제품에 비해 결코 가격이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그는 또 “제작은 일본에서 하지만 제품의 디자인과 기본 컨셉트는 모두 내가 제공한다”며 “일본의 고급기술을 이용할 뿐 아주 일본제품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도자기는 나의 운명’=그가 도자기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렸을 적부터.어머니 몰래 부엌에 들어가 우리 나라 전통 사기그릇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곤 했다.그리고 그 빛깔과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는 미술대학에 진학해 도자기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저 교사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던 부모님의 반대로 벽에 부딪혔다.자신의 뜻을 굽힌 그는 지난 72년 성신여대 영문학과를 졸업, 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한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마음 한구석에서 불끈 솟아올랐다.결국 ‘선생님 생활’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고 만다.2년여를 일본의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뒤 75년 귀국한 그는 곧바로 도자기를 수입·공급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사장은 “당시 국산 도자기들은 아기자기한 멋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며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일본 도자기를 국내에 소개하고 싶었다”고 창업배경을 설명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이 많이 어려웠습니다.특히 우리 나라와 일본은 식생활문화가 각각 수저문화·젓가락문화로 판이해 제품의 디자인을 근본부터 바꿔야 했습니다.수십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제대로 된 물건 하나를 만들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고생이 ‘보약’이 된 덕분일까.현재 일본 사가현에서 생산되는 ‘아리타야끼’란 제품을 수입, 미국계 대형할인매장인 코스코(CostCo)와 서울 남대문의 수입품 전문상가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데 월 매출액이 1억원을 넘고 있다.

사업이 순탄한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이사장에겐 아직 ‘일생을 건 목표’가 남아있다.자신이 디자인한 도자기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이를 위해 2∼3년 후 일본으로 가 보다 체계적인 공부를 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자기는 운명같습니다.가끔 ‘그만둬야지’하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잠시 뒤 ‘이번엔 어떤 디자인으로 만들어볼까’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걸 보면 스스로도 말릴 방법이 없습니다.그래서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신감이 성공의 비결=이사장이 도자기 제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안료(물감)와 디자인.안료는 잘못 쓰면 소비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게 되고 디자인은 당장 눈에 띄는 것이어서 소비자들의 제품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에서는 아직도 무공해 안료와 실리콘 패드 등 초기술을 요구하는 부분에 있어 일본 및 여러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며 “특히 원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일본에서 만드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요즘도 1년에 4개월은 일본에서 머물며 생산 및 품질관리를 직접 책임지고 있다.또 디자인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유럽 등지로의 장기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한번 옳다고 생각한 것은 끝까지 옳다, 남의 손에 맡기고는 마음 편할 수 없다’는 외곬적인 성격 탓이다.

그의 이런 성격이 빛을 발했던 적이 있다.지난 87년 이사장은 그릇 색깔을 5가지로 다양화한 디자인을 개발해 제작 담당인 일본의 기술자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심지어는 ‘뭘 그런걸 만드느냐, 한국사람들은 색동저고리를 좋아하더니 그릇도 색동저고리처럼 만든다’며 비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사장은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다.결과는 대만족.‘오색접시’라고 불리는 이 제품은 국내는 물론 일본의 소비자들로부터도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화려한 색과 심플한 디자인, 무엇보다 1만원대라는 저렴한 가격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사장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내가 생각하고 그려왔던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것은 물론 작은 전시관을 지어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blue73@fnnews.com 윤경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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