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업계가 4년마다 찾아오는 불황 사이클의 늪에 빠져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꾸준히 되풀이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쉽게 시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시장에서 128메가D램은 개당 1.75달러대, 64메가D램은 0.88∼1.1달러대까지 급락해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팔 때마다 손해를 보고 있다. 가격은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다.
이같은 반도체 업계의 수익 악화는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4일(현지시간) “호황이 오면 앞뒤 안 가리고 일제히 설비 증설에 나서는 반도체 업체들의 조급함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면서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는 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사가 잘돼 큰 돈을 벌면 이를 설비확장에 쏟아부어 결국 공급과잉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반도체 경기 사이클은 4년마다 되풀이돼 올림픽주기라고도 부른다.
실제 지난해 반도체 업계는 PC·통신·가전 업계의 실적 호전에 따른 물량확보 경쟁으로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올들어 상황은 급반전됐다. 팔고 남은 재고가 창고마다 수북이 쌓여 있다. 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반도체 공장 가운데 겨우 42%만이 완전가동 중이다. 이마저도 수요를 초과하고 있어 공급과잉이 풀리지 않고 있다.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반도체 업체들의 올 순익이 지난해보다 14% 가량 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감소비율이 17∼21%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SIA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더그 안드레이는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반도체 공장 건설은 보통 2년 넘게 걸리기 때문에 공장을 제대로 돌릴 만하면 공급과잉에 직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선 첨단 재고관리 시스템을 활용해 그때그때 수요를 측정하고 생산량을 조절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란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타임스는 이같은 기대가 시기상조라고 일축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PC 등 성숙산업에서는 수요예측이 가능할지 모른다. PC 수요는 통상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3·4분기와 크리스마스가 낀 4·4분기에 급증세를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통신장비업 등 변화무쌍한 성장산업에서는 수요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게 파이낸셜 타임스의 지적이다.
/ kkskim@fnnews.com 김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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