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에 ‘3재’가 겹쳤다. 이 때문에 무소불위의 위상에도 흠집이 나는 등 공정위가 시험대에 올랐다.
올초부터 기업규제완화를 둘러싸고 재계로부터 거센 반격을 받아온 공정위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불공정거래행위 혐의를 적발해 거액의 과징금을 물린 삼성 SDS와의 소송에서 패소했다.5대 재벌그룹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관련 소송에서 공정위가 패하기는 20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공정위가 느끼는 충격도 적지 않은 모습이다.
여기에 ‘재벌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해온 이남기 위원장도 지난 4월 한나라당이 문제삼은 ‘불법임기’ 논란의 대상에 올라 있다.이 위원장이 법상 3년 연임한도를 넘어 공정위 상임위원직을 맡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3일 한나라당이 낸 소송을 일단 각하했다.그러나 ‘공정위원장의 임명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인사적체 등으로 침체된 내부조직과 잇따른 직원 이탈도 공정위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요소중 하나다.
◇강화된 재계의 도전=재계는 지난 5월 정·재계 간담회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주장했다.민·관 합동 ‘공정거래 태스크포스’를 거쳐 나온 개선방안은 결국 21개 요구사항중 8개를 수용한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이에 대해 공정위는 제도의 근본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구조조정과 투자촉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쪽에서는 ‘개혁후퇴’라며 비판했고, 재계쪽에서는 ‘시늉만 낸 것’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공정위에 대한 재계의 불만과 도전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자유기업원과의 공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부 기업의 출자로 운영되는 자유기업원의 민병균 원장은 5월초 ‘시장경제와 그 적들’이란 글을 통해 공정위의 재벌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이어 6월에는 이형만 부원장이 30대 기업집단제도를 ‘왕따 규제’로 못박고 폐지론을 주장했다.공정위도 반박문을 통해 “제도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재벌정책 방향을 오도할 우려가 있다”고 맞받아쳤다.재계가 공정위의 위상에 원색적인 정면공격을 가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부당내부거래소송 패소 부담…내부 인사적체 불만도 팽배=삼성 SDS와 벌인 부당내부거래 관련 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한 것도 공정위의 위상에 바로 타격을 입혔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씨(삼성전자 상무보) 등에 대한 삼성SDS의 지원행위는 그동안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재벌일가의 부당한 재산 부풀리기’ 사례로 주목해온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적용이 잘못됐다며 삼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자칫하면 부과한 과징금까지 모두 돌려줘야 할 궁지에 놓이게 됐다.
공정위 패소는 이재용씨에 대한 국세청의 증여세 추징, 재용씨와 현대자동차 정의선 상무 등 재벌 3세에 대한 계열사 부당지원행위 조사, 언론사에 대한 공정위·국세청 조사 등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인사적체에 숨막힌다= 공정위 내부의 인사불만도 공정위의 딜레마다.지난 5월 공정위 일부 과장들은 “심각한 인사적체로 사기가 떨어지고 조직이 활기를 잃었다”며 간부들에게 “자리가 마련되면 과감히 용퇴해 달라”고 용퇴를 촉구해 파문이 일었다.다른 부처와 달리 산하기관이 없는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퇴임관료들의 진로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이때문에 임기나 정년을 채우는 경우가 흔하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이들 가운데는 ‘공정거래현장학습의 이점’을 들어 근무를 자원하는 이들이 많다.그렇지만 갑갑한 조직때문에 지난해부터 공정위를 떠나는 공무원들이 부쩍 늘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벤처 붐 등을 타고 이탈한 서기관급 이상 공무원이 중앙부처중 가장 많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안팎에서 벌어진 ‘내우외환’을 어떻게 헤쳐갈지 주목된다.
/ lmj@fnnews.com 이민종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