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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현안 긴급점검]中企 유동성대란 오나


“IMF때도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으며 외환보유고가 세계 5위 수준인데다 4·4분기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납품하는 모 대기업의 경리담당 이사가 오는 9월이후 회사채 자금상환을 위해 긴축자금 운영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현금결제를 할 수 없다며 납품대금을 100% 어음, 그것도 6개월 이상 장기어음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체에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긴축경영에 들어가는 것은 백번 이해하지만 일방적으로 대금 지불방식을 바꾸는 등 하청업체인 중소업체를 죽이는 식으로 경영전략을 짜면 어떡합니까.”

27일 인천 남동공단 입주업체 대표들은 “대통령까지 나서 경기부양,내수진작을 외쳐보지만 실제 산업현장은 극도의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현장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지원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우주통신산업의 김동진 사장은 “오디오 메이커인 A기업에 지난 97년부터 부품을 납품하고 있으나 요즘 납품대금 지불방식을 놓고 서로 사이가 악화됐다”며 “A사는 50대50정도로 지켜왔던 현금 대 어음결제 비율을 어기고 이달부터 일방적으로 100% 어음결제를 하는데다 그나마 6개월이 넘는 장기어음을 끊어주고 있어 원자재 대금은 물론 직원 급여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고 어려운 상황을 호소했다.

반도체,철강 등 국내 주력업종의 경기 불황여파로 삼성,포철 등 대형 기업들이 긴축경영에 돌입한데다 하반기에 만기 도래하는 34조원규모의 회사채 상환여파로 산업현장의 중소기업들은 어두운 모습을 드리우고 있다. 대기업은 현금 유동성 확보에 나선 지 오래고 금융권도 겉으로는 대출을 확대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신을 극도로 규제하고 있다. 또 ‘급전 창구’로 활용됐던 사채시장 마저 지난 4월이후 사정활동 강화로 급격히 냉각, 이를 통한 자금조달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어서 중소업체는 2중고,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대기업의 장기어음 지급=만기도래 회사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대기업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위해 최근 여유자금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에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운영과 프라이머리CBO(채권담보부증권)발행 등을 통해 ‘회사채 불씨’를 진화할 수 있다지만 시장여건 악화에 따른 ‘변수’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최대 피해대상은 중소기업. 대기업은 종합적인 자금운용 계획을 통해 현금확보에 나서면서 1차적으로 하청업체의 납품대금을 6개월이상 장기어음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에따라 중소업체들의 유동성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금융권 신용등급 강화=경기도 시화단지내 섬유업체인 B기업의 김모사장은 “지난 3월이후 수출실적이 계속 감소하면서 부채비율이 다소 높아지자 5년간 거래해 온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최근 대출자금 회수 명령을 받았다”며 “IMF때도 버텨왔는데 갑자기 대출금 회수명령을 받으니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5억원의 자금을 갚기위해 타 은행과 기타 제2금융권의 문을 두드렸지만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만기도래 회사채로 금융권 분위기가 경색되면서 시중은행과 신용금고 등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불과 2개월전만 해도 신용등급 BB- 기업의 은행 대출도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바뀌면서 BB+등급의 기업들도 퇴짜를 맞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B기업의 신용등급은 BB+로 올해 초까지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아쉽지만 단기자금은 대출을 받았었다.

경기도 안양의 한 중소 건설업체 사장은 “은행에 돈이 남아돌아 말로는 신용등급만 총족하면 대출해준다 해놓고 막상 구비서류를 갖고 가면 건설업체라서,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증을 안받아서 등등 핑계를 대고 대출을 안해 준다”며 “정부 정책입안자들은 과연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급전창구 사채시장도 침체=지난 4월이후 사정활동이 강화되면서 최대 사채시장인 서울 명동과 강남의 경우 요즘 사실상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중소기업에 있어 사채시장은 최적의 ‘급전 창구’면서 ‘최후의 자금조달처’지만 이마저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명동 사채시장의 경우 최근 월평균 10여건 미만의 어음할인만이 이뤄지고 있을 정도다.

서울 구로 서울디지털단지내 한 중소기업인은 “어음결제일이 임박하고도 자금이 없으면 고리의 사채라도 차환하기위해 명동으로 달려갔으나 지금은 이것 조차 쉽지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대책=중소기업청은 지난 1월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16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CBO를 발행했다. 신용등급이 낮아 독자적으로 회사채 발행을 할 수 없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긴급 수혈한 것이다.

중기청은 10월에 추가로 프라이머리CBO를 발행할 계획이다.
또 4000억원에 달하는 경영안정자금과 벤처창업자금을 지원하고 벤처캐피털사에 벤처프라이머리 CBO를 발행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회사채 여파’로 인한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준다는 것이 정부측 입장이다.

홍순영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조사상무는 “이미 상반기에 경영안정자금이 모두 바닥난 상태지만 정부의 추가 자금조성이 이뤄지면 중소기업의 숨통을 열어줄 것”이라며 “프라이머리CBO 발행도 급한 불을 끄는데 한몫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pch7850@fnnews.com 박찬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