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불황장기화 되나]경기회복 자신감 ‘바닥’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7.27 06:32

수정 2014.11.07 13:20


국내외 경제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경기회복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 각종 거시경제지표들은 바닥권에서 좀처럼 탈출하지 못한 채 ‘게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낙폭을 확대하는 형국이다. 국내경기가 3·4분기에는 바닥권을 다지고 4·4분기부터는 반등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이자 전망이지만 상황은 그렇게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추세라면 완만한 ‘U자형’ 경기회복도 어렵고 ‘L자형’ 장기침체 국면으로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심지어 경기의 바닥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고개를 들고 있다,

◇개선조짐 없는 수출=성장의 양 날개에 해당하는 수출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째, 투자는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수출은 7월에 더 줄어 연중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문제는 향후 상황이 더 좋지 않다는 것.

우리 수출은 반도체를 비롯한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볼황이 갈수록 심화·확산되고 있어 연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돼 있다. 수출의 15.1%를 담당하는 반도체는 수출액 뿐만 아니라 최근들어 수출물량까지 줄기 시작했다. 가격폭락이 문제이지 물량은 그대로라는 정부의 해석도 이제는 먹혀들 수 없게 됐다. PC시장도 완전히 얼어붙어 지난 2·4분기에는 끝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2·4분기 세계 PC판매량은 전년동기 대비 1.9%가 줄었다. PC판매가 분기통계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 86년 이후 15년만이다. 이 여파로 국내 전체수출의 8.3%를 차지하는 PC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세계경기의 침체와 이에 따른 전세계적 수요감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국내외 대표기업들의 ‘감산·감원 도미노’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랭킹 1위인 삼성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현금확보와 투자축소를 골자로 하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LG SK 포철 등 다른 간판급 기업들도 강도높은 ‘살빼기’를 추진중이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400대 기업의 하반기 시설투자는 상반기보다 2.8% 줄어든 14조9682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델파이,델컴퓨터,노스웨스트,아메리칸 익스프레스, ABB,필립스, 알카텔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초우량기업들이 줄줄이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세계은행은 최근 지난해 4% 성장했던 세계경제가 올해는 2%도 성장하지 못할 것이며 지난해 13% 증가했던 세계 교역량도 3%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역량이 8% 정도 늘어날 것이란 당초 전망을 절반 이하로 하향조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미국과 일본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와 0.5∼1.0%로 낮췄다.

◇내수회복도 한계=정부는 수출과 투자부진에 따른 저성장 쇼크를 만회하기 위해 건설과 소비쪽의 내수부양을 적극 추진중이다. 그러나 향후 경기가 살아나고 소득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자꾸 꺾이고 증시마저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회복은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지난 1∼5월 평균 임금상승률은 6.5%로 지난해 동기의 9.0%에 비해 2.5%포인트 하락했고 이 기간 실질임금상승률은 7.6%에서 1.7%로 5.9%포인트 급락했다. KDI는 “임금상승률 둔화가 경기불황에 따른 당연한 결과지만 결국 내수확대를 제약하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전망지수(CSI), 도소매판매, 내수용소비자출하 등은 상승기류를 타고 있으나 추락하는 경기를 떠받치기에는 강도와 속도가 너무 약하다.

◇장기침체에 대비해야 한다=성장엔진인 수출과 투자가 계속 뒷걸음질치는데 내수마저 지지부진하면 경기침체는 ‘L자형’으로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은 성장률 기대치를 더 낮추면서 성장잠재력을 배양하는 대책을 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주체들의 성장기대치부터 낮춰야 긴축과 구조조정의 고통을 분담할 수 있고 내수진작용 경기부양책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반도체 불황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이로 인해 미국경기의 회복도 지연되고 있어 올해 국내 경기회복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김부원장은 “설사 미국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더라도 IT부문의 과잉투자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우리 수출이 회복되는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앞으로 경기회복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커진다”면서 “재정확대를 통한 내수견인형 투자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4·4분기 경제성장률을 아무리 좋게봐도 5%를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는 하반기에구조조정의 성과를 가시화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심리인정을 꾀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수출기업들의 채산성 확보를 위한 환율안정과 투자·내수활성화를 위한 세제 인센티브 확대도 적극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태규 연세대 교수는 “미국 경제회복이 올해말까지는 계속 어렵고 내년에나 가야 점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미국 현지 경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라며 “따라서 4·4분기 성장률이 잘해야 4% 중반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 kyk@fnnews.com 김영권 민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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