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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저금리’ 부작용]실물경제 ‘돈 흐름’ 꽉막혀


실질금리가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국내 금융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에서 남아도는 돈이 실물부문으로 흐르지 못하면서 투자와 소비는 오히려 위축되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자금시장에서는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간 조달여건이 양극화되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이상 과열현상을 보이는가 하면 기업퇴출이 늦춰지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저금리의 부작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조속한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살릴 기업은 살리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과감히 정리해 기업의 신용위험을 제거하는 것만이 시장이 안정을 찾는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초저금리시대 왜 왔나=한국금융연구원의 정한영 박사는 “수신금리가 내려가는 이유는 경기침체로 인해 기업들의 설비투자 수요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은행들이 믿고 대출할 만한 기업이 드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외환위기 수습과정을 거친후 돈을 대거 풀면서 연 30%대에 육박했던 초고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펼쳐온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같은 금리인하가 소비와 투자의 증가를 유발하고 경기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메커니즘의 고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우리 경제가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다.

◇유동성 함정=한국은행이 지난달 5일 콜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때 일부 금통위원들은 이에 반대했다.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가 주된 이유였다.

유동성 함정이란 정부가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금리가 내려가면 돈이 주식시장 등에 몰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의 앞날을 점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현재의 저금리가 경기부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은 드물다.

유동성 함정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 경제의 장래가 불투명해 항상 ‘만일의 사태’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자금 담당자는 “기업들이 싼 금리로 돈을 빌려 대출금을 갚은 뒤 남은 돈은 단기금융상품에 넣어두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시장 양극화 현상도 초래=저금리는 자금시장 양극화현상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일부 우량기업은 서로 돈을 갖다 쓰라는 금융기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거 차입금 상환에 열중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4분기에만 부채를 1조3000억원 줄여 부채비율을 1·4분기의 57%에서 47%로 낮췄다. LG화학도 저금리 시대를 맞아 연 6%대의 금리로 회사채를 차환 발행하고 1년짜리 기업어음(CP)도 발행해 과거 고금리 상황에서 차입했던 부채를 갚는 방법으로 금융비용을 줄여가고 있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라고는 하지만 정작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에는 돈이 돌아오지 않아 자금시장이 왜곡돼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금리 반등 가능성은=당분간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를 불러온 중요한 원인인 부실기업 퇴출이 아직 끝나지 않은데다 증권시장 전망마저 아직은 낙관하기 어려워 하반기 금리가 다시 오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은행들은 넘치는 돈을 국공채 등 우량채권을 매입하는 데 쏟아부으며 국공채 금리를 떨어뜨리고 있고 이같은 채권금리 하락은 다시 예금금리를 끌어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바닥을 다져야 금리도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재로선 바닥이 어딘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은은 지난 7월 콜금리 인하가 금리경로와 실물경로를 거쳐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결국 한은은 콜금리 인하가 실물경로에 반영되지 못했음을 자인했다.

한은 관계자는 “콜금리 인하로 예금 금리는 떨어졌지만 실물부문으로 자금이 돌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예금금리가 더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없나=금감원 관계자는 “저금리에 따른 부작용을 없애는 길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라며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의 조기 정착을 통해 기업의 신용위험을 제거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는 나라경제를 책임진 정부에뿐만 아니라 이자소득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에게도 큰 문제다.

전문가들은 근로자 우대저축이나 생계형 저축 등 비과세 저축상품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또 상호신용금고 등 제2금융권을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금고는 아직까지 연 9%대 금리를 주는 곳이 있다. 그러나 금고중엔 경영이 부실한 곳들이 상당수 있는 만큼 돈을 맡기기 전에 해당금고의 재무건전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djhwang@fnnews.com 황대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