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독일의 産學협력] “산업체 5년 근무해야 工大교수 임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8.24 06:39

수정 2014.11.07 12:58


▲박성조교수=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 이렇게 대담할 기회를 주어 고맙다. 오늘은 한·독 상호 관심사에 대해서 토의해 보고 싶다. 한국에 자주 온다고 들었다. 이번 방한의 구체적 목적은.

▲볼프강 얀케 부총장=토의할 기회를 준 데 대해 나도 감사 드리고 싶다. 지난 2∼3년 사이 한국을 스무 번도 넘게 찾았던 것 같다.

이번 방한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한·독 협력 모색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양국간 협력이란 두 나라 대학간 또는 산업체 및 산업간 협력을 말한다. 이번 방한에서는 특히 목포·무안지역의 교량건설에 관한 기술검토 또는 조언, 그리고 한국제품, 그 중에서도 오렌지 쥬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것을 촉진하는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박교수=방금 교량 건설이나 가공식품의 유럽 수출 등에 대해 말했는데 크게 보아 한국의 산업 인프라 건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에 어떤 계기로 관여하게 됐나.

▲얀케 부총장=우리 대학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산학협력에 매우 강한 전통을 갖고 있다. 우리 학교의 모든 학생은 예외없이 재학중 산업체 근무라는 ‘특별인턴프로그램’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전체 학생 8000명이 산학협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교수 300명이 지도·감독한다.

또 우리 학교는 외국에 협력기관을 많이 두고 있다. 이들 협력기관에 학생을 파견해 국제경험을 쌓게 한다. 매년 전체 학생 가운데 15%가 해외여행에 나선다. 이 비율을 20%로 끌어올리는 것이 대학당국의 장기적 목표 가운데 하나다. 우리 대학의 특장이 이럴진대 동북아경제협력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내가 어찌대외협력에 나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말씀드리겠다.

▲박교수=베를린기술공대는 산학협력에 특히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독일 대학가에는 이런 교육이념이 대단히 보편적인가.

▲얀케 부총장=독일에는 산학협력이 매우 발달해 있다. 공과대학의 경우 모든 교수가 최소한 5년간의 산업체 근무 경력을 지녀야 교수로 임용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런 경험이 있어야 좋은 교수가 된다.

베를린 지역의 경우 기업체 종업원 80% 이상이 중소기업에 고용돼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의 비중이 크다 보니 대학·중소기업 간 협력도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연구개발(R&D) 기능이 약하게 마련이다. 이런 취약점을 대학이 벌충한다. 대학의 교수와 학생이 중소기업의 R&D 기능을 대신하는 것이다.

국제 차원의 경험을 쌓고 협력해 나가는 것은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당연시된다. 우리 대학의 경우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해외대학은 약 100개다. 그리고 우리가 특히 협력에 주력하는 지역은 동아시아다.

▲박교수=베를린 기술공대가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 관심이 높다는 것은 잘 알겠다. 다른 대학들도 그런가.

▲얀케 부총장=우리 대학은 1823년에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페터 로우네인데 그는 조경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였다. ‘포츠담선언’으로 유명한 도시 포츠담을 그가 설계했다. 훗날 경제장관 출신의 보이트 총장이 취임해 전기공학 등 많은 공학 관련 학과를 신설했다. 특히 보이트 총장은 국제협력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대학도 굳이 동아시아가 아니더라도 국제협력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

▲박교수=귀 대학에서 지멘스 등에 인재를 많이 공급한다고 들었다.

▲얀케 부총장=많은 공학자·기술자들이 우리 대학에서 공부했다. 증기엔진·철도 관련 전문 기술자들을 우리 학교에서 특히 많이 배출했다.

▲박교수=귀 대학에서 국제협력에 특히 주력하는 구체적 이유가 있으면 들려 달라.

▲얀케 부총장=보이트 총장의 교육이념을 따르는 것이다. 그는 “모든 기술자는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당시 그의 이런 슬로건은 독일이 기술수준에 있어 영국을 따라잡고 능가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교육이념은 자연히 “모든 학생은 재학중 적어도 한 차례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실천적 구호로 정착되었다. 쉽게 말해 국제적으로 두루 쓸 수 있는 산업 전문가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졸업후 외국 기업의 기술자로 직업생활을 시작한다면 더욱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박교수=이를 위한 특별한 전략은 있는가.

▲얀케 부총장=외국대학 또는 독일 내 다른 대학과 교수·학생 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파트너십을 형성한다. 또 특정한 국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교수·학생이 더불어 공부하게 된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의 적용대상을 유럽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로봇시스템을 위한 심해 원격통제장치를 이미 개발했으며 지금은 유엔이 지원하는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 우한대학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박교수=귀대학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해외 기구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얀케 부총장=중국 우한에 소재한 ‘베를린·우한기술센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한국 마산의 창신대학과 공동으로 한독중소기업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중국 옌벤과기대에 소규모 산업공단을 설립한 것도 일종의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또 이 대학에 계측공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중국과 유럽은 서로 계량법이 다르다. 그래서 통일시킬 필요가 있다.

▲박교수=한국 등지에서 귀대학을 찾는 유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나.

▲얀케 부총장=우리대학이 산학연계에 강하다는 것은 아까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20년 이상 외국인들을 교육해 왔다. 탄자니아, 남미 국가들의 기술자들을 받아 위탁교육을 해 왔으며, 중국 기술자들에게는 정비기술을 가르쳐 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 삼성그룹에서 자동차기술자들이 연수차 우리 대학에 왔다. 그래서 우리는 다임러벤츠, BMW 등 독일 자동차메이커들과 연계해 이들을 교육했다.

지금도 우리는 외국에다 대고 우리 대학에 기술자들을 보내달라고 요청중이다. 최근에는 학내에 ‘국제기술이전경영’(ITTM)이라는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이 과정에 한국 중국 일본 스페인 학생들이 등록했다. 동남아 학생도 많다. 강의는 물론 영어로 한다.

▲박교수=귀대학과 한국 간 협력사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학생·교수 교환사업 말고 무엇이 있는가.

▲얀케 부총장=프로젝트 베이스로 진행한다. 이에는 문화·언어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다. 상호이해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

한국과의 특수한 협력사례로는 ‘신속 모델링’이라는 과제를 놓고 한국의 계명대와 진행중인 협력사업이 있다. ‘신속모델링’이란 자동차 부품을 만들 때 신속하게 특정한 모델, 즉 원형을 창출함으로써 모델을 수없이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낭비를 줄이는 기술이다. 이를 확대하면 새로운 공장건설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현재 계명대는 우리 대학의 도움을 받아 엔진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공정을 건설하고 있다.

▲박교수=다른 사례는.

▲얀케 부총장=우리 대학은 식품포장 기술에 강하다. 학교 안에 독일연방식품포장연구소를 두고 있을 정도다. 시리얼로 유명한 미국 켈로그사의 포장도 우리가 개발했다.

이번에 전라남도 무안군 정부와 공동으로 한독식품포장연구소를 설립키로 했다. 이 사업은 이미 계약이 체결된 상태며 이제 연구소 건설만 남았다. 이 연구소는 식품포장시스템 개발이 목표다. 구미 기준에 맞은 포장기법을 개발해야 한국 식품을 많이 수출할 수 있다. 전자제품 등 공업제품 외에 식품도 한국에서 수출한다. 그러므로 포장의 국제화가 필요하다.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앞으로 식품의 맛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할 계획이다. 예컨대 인삼차 등 일상음료로까지 연구범위를 넓혀 포장, 맛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오렌지 쥬스를 포장하는 방법을 주로 연구중이지만 앞으로는 양파에서 알콜을 추출하는 기법도 연구할 작정이다.

▲박교수=한양대와 공동으로 ‘안산기술공단’ 사업에 관여한다고 들었다.

▲얀케 부총장=내 동료 한 사람이 철도의 레일에 접촉하지 않고도 열차의 속도를 재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가 우리 대학에 찾아와 안산기술공단과 접촉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연결지어 준 것이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비단 철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확대하면 모든 생산라인에 사용할 수 있다.

또다른 것으로는 “항공기가 얼마나 흔들릴 때 승객이나 물건이 피로를 느끼는가”라는 것을 주제로 한 연구가 있다. 이 프로젝트 역시 한양대와 공동으로 연구중이다.

독일 기술자·공학자들이 한국에 주목하는 것은 좁은 국내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넓은 국제시장으로 시야를 넓히기 위한 것이다.

▲박교수=베를린기술공대의 국제협력 담당 책임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말해 달라.

▲얀케 부총장=대학 내에서 나의 공식 직함은 연구 및 국제협력 담당 부총장이다. 우리 대학의 아카만 총장은 기술자의 세계화에 관심이 많아 이를 적극 지원한다. 대학의 국제화가 그의 주요 업적으로 꼽힐 정도다. 그는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나는 그런 총장의 구상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다. 아카만 총장은 오는 10월말에 다시 한국에 온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 오면 새로운 기회를 탐색할 것이다.

▲박교수=아까도 말했지만 한국식품의 세계화는 사실 절실한 실정이다.

▲얀케 부총장=좋은 지적이다. 기술협력이라는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기브 앤드 테이크가 아니겠느냐. 한국 기술자들을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앞으로 계속 협력하고자 한다. 식품과 관련해서는 목포대학과 식품가공을 놓고 상호연구 과정을 개설하기로 했다. 학자들이 두 대학을 오가며 교환연구를 하게 될 것이다.원주에 있는 한라대학교로부터도 상호연구 제의를 받았다. 우리는 상호 이득이 되는 프로그램을 얼마든지 개발해 나갈 수 있다.

현재 우리 대학에서는 바이오닉이라 불리는 기술을 개발중이다. 이는 자연상태를 공산품 제작에 적극 원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예컨대 콜라캔의 표면에 균등한 융기가 마치 이슬이 맺히듯 규칙적으로 생성된다면 콜라캔을 잡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런데 깡통을 이런 상태로 만들려면 현재 기술로는 프레스로 눌러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알루미늄의 소모가 많다. 그러나 자연상태와 비슷하게, 마치 저절로 그런 융기가 생기는 것처럼 만들면 재료도 절약되고 미관상으로도 좋은 표면이 생겨나게 된다. 현재 우리는 코카콜라를 위해 이런 깡통을 개발중이다.

▲박교수=대외 협력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귀하의 경험에 비추어 남북한 간에 경제·기술 협력의 가능성은 어떻다고 보는가.

▲얀케 부총장=독일 통일 후 동독 기업의 민영화 과정에 참여한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 후 그들(북한)의 것들, 즉 사람의 능력과 제품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는것이다. 만약 인력이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제품이 충분히 훌륭하다면 그것들을 보유한 기업은 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을 재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에 가 보니 모든 것이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화력발전소 굴뚝마저 아무 것도 뿜어내지 않고 있었다.
옌벤과기대의 김총장은 북한과 연계가 강하다. 만약 북한과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면 김총장의 조언을 듣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박교수=오랜 시간 유익한 이야기 들려주어 고맙다.

/정리=송철복 교육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