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출자규제’아니라 ‘권장’할 때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9.05 06:43

수정 2014.11.07 12:48


30대 그룹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으로 적어도 5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이 백지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자원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 기업규제종합실태 조사로 밝혀진 이러한 결과는 고식적이고 경직된 규제가 실물경제의 목을 죄는 역기능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를 말해준다.

문어발 경영을 차단하기 위해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고수하려는 공정위의 입장이나 논리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정위의 주장은 외환위기 이후, 특히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대기업 경영자세에 큰 변화가 일고 있음을 간과한 흠이 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자 대기업이 스스로 감량경영에 나서고 있는 최근 동향은 이들이 시장기능에 얼마나 민감해졌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경제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등으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산업동향’에 따르면 산업생산 증가율은 마이너스 5.9%를 기록하고 있고 공장가동률은 71%로 낮아졌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가 줄어 마이너스 18%를 기록한 98년 12월 이래 가장 큰 감소를 보이고 있다. 성장의 운동력인 설비투자의 지속적인 감소는 1·3분기 성장률이 정부 전망치 3%를 크게 밑도는 1%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잠재 성장률 5%를 앞으로 5년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설비투자율 5.7%를 유지해야 한다는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분석이 정확한 것이라면 현재의 투자위축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임시투자세액 공제 대상을 확대하고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투자 등에 대한 세제지원 시행시기를 이달 3일분부터 앞당겨 적용하기로 한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투자활성화 방안에도 불구하고 투자 여력과 의욕이 있는 대기업은 ‘총액투자 제한’에 묶여, 제한을 받지 않는 기업은 여력이 없어 신규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 경기회복과 잠재성장률 유지를 위해서 신규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30대 그룹에 대한 출자총액 제한을 과감하게 푸는 길밖에 없다.
이번 민관 합동 실태 조사를 통해 ‘출자총액제한’의 역기능을 확인한 이상 더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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