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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하는 재계-한솔] 3형제 분담경영 ‘부흥의 돛’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9.17 06:46

수정 2014.11.07 12:40


지난 99년 한솔은 삼성에서 분가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만났다. 차세대주자로 키웠던 한솔엠닷컴이 SK텔레콤,한국통신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계열사 전체에 짐이 되고 있었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그들 앞에서 재계순위 15위권의 한솔이 출혈적인 보조금 지급 등을 지속한다는 건 무리가 따랐다.

결국 한솔은 한솔엠닷컴을 팔기로 결정했다. 처음에 인수의사를 밝힌 곳은 LG텔레콤. 그러나 수개월에 걸친 매각협상에도 불구하고 인수가격차이로 지난해 2월 깨지고 말았다. 곧이어 한국통신이 인수자로 나섰으나 그마저도 3월 무산됐다. LG텔레콤이 다신 인수에 나섰고 4월28일 합의문에 서명키로 의견접근을 봤다. 하지만 나스닥의 첨단 기술주가 연일 폭락하자 LG측이 서명 3시간 전에 돌연 발을 빼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주당 5만원(당시 한솔엠닷컴 주가는 2만5000원)은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한국통신이 다시 접근했다. 마라톤 협상 끝에 지난해 6월 초 정보통신부 장관이 협상을 승인했고 1주일 뒤 청와대에서도 허가했다. 양측은 서울 외곽의 한 골프클럽에서 인수가를 제외한 최종조건에 합의했다. 협상은 7월26일 막을 내렸고 당시 주가는 1만5900원이었다.

이후 한솔은 ‘부활의 닻’을 높이 올렸다. 그리고 한솔을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는 차남인 조동만 부회장에서 3남 조동길 부회장으로 바뀌는 듯한 양상이었다.

◇오너는 ‘정중동’=한솔의 실질적 오너인 이인희 고문은 스스로 회장 명함을 새기지 않는다. 대신에 전문경영인인 남정우 그룹 총괄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워 경영을 챙긴다.

자신은 강원도 오크밸리에서 소일하며 1주일에 하루 정도 서울로 올라와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 재가하는 수준에 그친다. 세 아들에게 사업을 떼어주고 책임을 묻는 스타일이다.

이고문은 이미 지난 3월 장남인 조동혁 부회장 등과 함께 한솔제지 등기임원에서도 물러났다. 조동만 부회장은 이미 지난해 한솔제지 등기임원 자리를 내놨다. 이에따라 지난해 말 대표이사직을 맡은 조동길 부회장만이 가족 중 유일하게 한솔제지의 등기임원으로 남아있다.

재계에서는 이와 관련,조동길 부회장이 그룹의 주요사업을 이끌게 된 만큼 그룹의 사실상 후계자로 정해진 것이 아니냐는 추론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조동길 부회장은 올들어 그룹의 비전인 디지털경영 방침을 세우고 팬아시아페이퍼 지분매각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재계는 장남인 조동혁 부회장이 한솔금고·한솔창투 등 금융계열을,차남인 조동만 부회장이 한솔텔레컴·한솔아이벤처스 등 정보통신 부문을,그리고 3남인 조동길 부회장이 한솔제지·한솔케미언스·한솔파텍 등 제지군과 한솔전자·한솔CSN 등을 이끌어 가는 3각구도를 갖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솔 관계자는 “각 사업부문을 3형제가 역할분담에 따라 경영하고 있지만 재산분할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문분야를 맡게 된 것”이라며 “아직 후계구도 등에 대해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고 말했다.

◇3형제 삼각편대=금융분야 및 생명공학 분야를 관장하고 있는 조동혁 부회장은 미국 캔터버리고와 미들버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강북삼성병원을 거쳐 지난 97년부터 한솔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두 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외활동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 각료회의(APEC),다보스포럼 등에 매년 참석하면서 세계적인 경영 트랜드를 읽는데 상당한 식견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국제회의 등에서 보고 들은 소감을 직접 리포트로 작성,각사 대표이사 및 임원들에게 전달할 정도로 국제감각을 갖췄다.

최근에는 차세대 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생명과학분야에 관심을 갖고 계열사인 한솔케미언스를 통해 벤처투자 및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연구개발(R&D) 분야를 집중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장남인 덕분에 친화력 및 융화력이 뛰어나 전체적인 의견 조율을 무난히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솔텔레컴을 중심으로 한솔의 정보통신,e비즈니스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조동만 부회장은 조동혁 부회장과 같은 고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 법학과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MBA)을 다녔다. 지난 85년 호텔신라 총괄담당 이사를 시작으로 한솔제지와 한솔PCS 등에서 일해왔다.

그는 “새시대의 패러다임은 정보화와 인간화”라고 강조하며 “디지털-정보화에 입각한 기업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통신학회 부회장,전경련 e-biz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정보통신계 인사들과 교류가 잦은 것은 물론 전문가 못지 않은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해에는 최태원 SK㈜ 회장,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신동빈 롯데 부회장 등 대기업 2·3세 경영자,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등 유명 벤처기업 사장들과 함께 벤처투자회사인 브이소사이어티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 이 분야의 세계적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컴덱스쇼나 세빗과 같은 세계적인 정보통신관련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전문가 및 최고경영자들(CEO)과의 교류를 넓혀가고 있다.

조동만 부회장의 취미는 골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을 맡으면서 국내의 여자프로골프의 위상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을 정도로 레저활동에 대한 애정 및 국제적인 감각도 갖췄다.

조동길 부회장은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분야를 관장하고 있다. 미국 필립스아카데미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삼성물산과 미국계 투자은행인 JP 모건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으며 지난 87년 전주제지(현 한솔제지)에 입사한 뒤 줄곧 제지부문에서만 일해오고 있다.

그는 외국 금융사에서 근무하면서 익히기 시작한 선진 금융에 관한 노하우와 뛰어난 식견,외국 금융전문가 및 컨설턴트와의 폭넓은 유대관계로 금융 분야에 능통하다.
조부회장은 한솔이 98년 세계적인 제지업체들과 팝코(현 팬아시아페이퍼)를 설립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 경영권을 유지와 외자유치를 동시에 성사시켜 모범적인 구조조정의 사례를 낳았다.

지난 99년 한솔이 중국시장의 발판으로 삼고자 인수한 홍콩 유일의 백판지 공장인 콩코디아(현 SCP)사를 인수할 당시에도 조동길 부회장의 국제적인 파이낸싱 식견과 인맥을 활용했기 때문에 경쟁회사를 물리치고 인수에 성공,잠재시장이라 일컫는 중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는 99년 한국협상학회에서 수여하는 ‘제4회 협상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대한테니스협회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테니스에 일가견을 가졌다.

/ blue73@fnnews.com 윤경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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