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1위의 자동차 업체였던 대우자동차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대우차의 역사는 모험과 좌절로 점철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대우차 탄생=대우차는 지난 50년대 미군 차량을 개조해 팔던 ‘신진자동차’가 모태다. 신진은 닛산의 블루버드를 조립생산하던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한 뒤 부평공장에서 도요타의 코로나 등을 조립 생산하며 사세를 확장,70년대 초 국내 1위의 자동차 업체로 부상했다.
지난 72년 도요타의 철수 이후 50%의 지분을 인수한 제너럴모터스(GM)와 손잡고 ‘GM코리아’로 사명을 바꿨다.
◇고유모델 개발 소홀,세계경영 도박=대우차는 80년 기아를 중소형 상용차 전문으로 일원화하고,승용차는 현대와 새한으로 이원화한 정부의 중화학공업 합리화조치에 따라 사실상 ‘복점체제’를 유지하며 이윤을 보기도 했지만 고유모델 개발에는 소홀했다.
대우차는 GM의 월드카 오펠 카데트 모델인 르망으로 기회를 엿봤으나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91년 경영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92년 이른바 세계경영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우와 대우중공업의 힘을 빌려 동구권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완성차 조립공장을 짓고 라노스,누비라,레간자 등 3개 모델을 동시에 개발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91년 가동에 들어간 창원 국민차공장과 96년 만든 군산공장은 국내 최고는 물론 일본업체에 근접한 생산성을 올렸고 특히 창원공장은 98년 1인당 생산대수 165대로 세계 1위의 생산성을 가진 공장으로 기록됐다.
과도한 무이자할부 판매와 차입경영으로 허점이 드러났으나 97년 12월 쌍용차를 인수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김우중 회장의 맹신과 도박에 가까웠던 해외투자는 결국 99년 8월 대우 계열사까지 끌어들여 동반 워크아웃을 맞이하게 됐다.
◇워크아웃에서 양해각서(MOU) 체결까지=대우차는 99년 8월26일 워크아웃 시작 이후 지난해 11월8일 최종부도를 냈으나 노사가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같은 달 30일 법원에 의해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대우차는 GM으로의 매각을 전제로 9992억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300여명 줄이고 재료비·경상비·투자비 등을 대폭 감축했다. 이 과정에서 부평공장 생산직 1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이같은 노력으로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내리 영업이익을 실현하는 등의 성과도 나타냈다.
/ kubsiwoo@fnnews.com 조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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