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한국의 ‘파워’ 회계법인] CPA 1700명 年매출 2300억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12.10 07:10

수정 2014.11.07 11:50


삼일회계법인은 국내최대의 전문가 집단이다. 국내외 공인회계사 1700명을 거느리고 연간 23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삼일회계법인은 회계법인, 병원, 법무법인등 국내 전문가집단중 외형면에서 가장 크다. 정상에 우뚝선 삼일의 성공비결은 도장(道場)론이라는 기업문화에 있다. 삼일인에게 있어 회사는 도장이고 선배 회계사는 사범이다. 창업 30년만에 국내 최대 전문가조직으로 우뚝선 삼일의 30년사를 거슬러 조명해본다.



◇위기를 기회로(98년∼현재)=삼일이 성장의 가속페달을 밟아 현재 위상에 굳건히 올라서게 된 것은 지난 98년 IMF 이후. ‘준비된 법인’ 삼일은 단일의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IMF 관리체제이후 불어닥친 구조조정 특수를 성장의 계기로 삼았다. 내부적으로는 임금삭감등 비용절감과 조직개편에 나서는 한편, 외부적으로는 결합재무제표, 금융기관 통폐합 실사, 기업인수합병, 부실업체 관련서비스와 공기업 컨설팅등 IMF수요가 폭발한 신규사업에 주력했다. 당시 삼일이 참가한 프로젝트는 ▲종금사 퇴출 ▲조흥·신한은행 실사, 하나·보람은행 합병, 제일은행 매각 ▲동화·경기은행 정리 ▲대우 계열 6개사 실사 ▲동아건설 경영컨설팅 ▲철도청 민영화 프로젝트 등 모두 굵직한 것들이다.

삼일은 특히 12개 대우계열사중 ㈜대우를 포함한 6개사의 실사를 직접 담당하고 안경태 대표는 12개사를 총괄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대우를 건설·무역·관리부문으로 분할하는 방안도 삼일의 아이디어였다. 이 같은 구조조정 특수에 힘입어 삼일은 ‘기업 주치의’로 명성을 떨쳤고 회계사 수와 매출액은 98년 3월말 700명, 577억원에서 현재 1700명, 23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한편, 이 와중에 삼일은 내부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 그동안 삼일과 제휴관계를 맺어온 쿠퍼스 앤드 라이브란드(Coopers&Lybrand)가 국내 세동회계법인과 제휴를 엮은 프라이스 워터하우스(Price Waterhouse)와 98년 합병을 했기 때문이다. 삼일은 합병 다국적 법인인 PwC가 한국내 유일한 멤버펌으로 삼일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다른 다국적 법인과 제휴관계를 맺을 것이며 기업문화가 너무 다른 세동과는 절대 합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삼일은 또 1년간 버티면서 결국 이를 관철해냈다.

◇성장의 시기(90∼97년)=지난 90년대는 삼일이 국내 최대회계법인으로 성장하는 시기였다. 당시 회계법인의 최대화두는 개방과 서비스 다양화였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단순한 감사업무에서 벗어나 한발 앞선 서비스개발에 나선 것이 삼일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삼일은 당시 해외제휴법인 C&L과 협력, 영국 일본 독일사무소에 한국부를 설치하고 현지에 진출한 대기업과 은행, 증권사의 법인설립 자문서에서부터 인허가신청, 정부보조금 신청 등 경영전반에 걸친 자문업무를 수행했다. 또 법인조직을 다각화해 ▲부동산 거래 ▲M&A 서비스 ▲관세 및 내국세의 이전가격 ▲종합경영컨설팅 등 다양한서비스체제를 구축했다. 삼일이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적절히 대응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방송, 정보통신과 관련된 컨설팅을 들수있다. 94년 제2이동전화 사업권과 관련해 신세기 컨소시엄 자문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지역민방 3개컨소시엄을 담당했다. 또 96년에는 PCS등 기간 통신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재무심사업무를 수행하는 등 IT분야의 전문자문가로 활약했다. 삼일은 이밖에도 전산화, 국제 네트워크 강화, 삼일총서 발간등을 통해 90년대 확실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탄생과 성장(71년∼89년)=삼일은 지난 71년 4월1일 라이부란회계법인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라이부란은 해외제휴법인인 라이브란드(Lybrand)의 발음을 한자어로 차용한 것이다. 당시 창립멤버였던 서태식, 권계홍, 황창연 회계사등은 모두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법인설립 전 이미 수년전 기아합동회계사무소를 공동 운영하다 법인으로 전환했다. 라이부란은 70년대 초반엔 중소형 법인에 불과했고 실질 경영권을 Lybrand에서 파견된 외국인이 행사함에 따라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렸다.

라이부란이 중견법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서태식 현회장이 74년 대표사원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서회장은 매년 20%씩 성장, 국내최고의 법인으로 만들겠다고 취임일성을 밝히고 만성적인 적자구조를 흑자로 전환시키기 위해 법인의 경영권을 외국인 사무소장에서 자신에게로 넘겨받았다. 76년 사명을 변경한 삼일은 78년초 삼성그룹의 결합재무제표 감사인으로 선정되면서 비상의 날개를 편다. 삼성은 외자를 조달하기 위해 국내최초로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기로 하고 삼일을 감사인으로 선택했다. 이어 럭키금성그룹(현 LG)의 결합재무제표를 수임하는 등 대기업시장에서 절대강자로 부상했다.
삼일은 특수분야 컨설팅에도 적극 나서 철도청(79년) 농어촌개발공사(76∼79년) 한국전력(81년) 한국통신(85년)의 경영개선 용역을 수행하고 83년부터는 25개 정부투자기관의 경영평가 업무를 주도했다. 삼일은 또 83년부터 컬러TV를 시작으로 화학, 조선, 섬유등의 반덤핑 케이스에 참여해 금성사,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한국타이어, 코오롱 등을 지원했다.
삼일은 87년 사무실을 서울 용산 국제센터빌딩으로 이전하고 탄생 18년만에 정상도약을 위한 기반을 완전히 구축했다.

/특별취재반- 증권금융부 이장규기자(팀장) 강종구기자 정홍민기자 천상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