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또 실적상품 손실보전인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2.05.07 07:51

수정 2014.11.07 11:47


외환은행은 하이닉스반도체 회사채 600억원어치가 편입된 신탁상품 8000억원의 가입고객(약 5만 계좌)에 대해 손실을 보전해 주기로 했다. 고객이 해당 신탁계정을 정기예금으로 전환할 때 높은 가산금리를 얹어주는 방식을 택했다. 은행이 실적 상품인 신탁계정 손실을 고유계정 자산으로 보전해 주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외환은행은 고유계정 자산을 신탁계정에 직접 넣지 않고 신탁에서 고유계정으로 옮겨오는 특정 고객에 대해서만 파격적인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편법을 고안, 장차 있을 수 있는 위법논란을 피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얼핏 보면 아무 하자가 없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고유계정 자산으로 신탁계정 고객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이치다.

외환은행의 이번 결정은 일부 신탁상품의 마이너스 수익률이 수신영업 측면에 미칠 부정적 효과를 고려하는 등 득실을 종합적으로 따져나온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신탁상품에 대한 원금보전, 또는 손실보전이 한국의 금융시장에 주는 부정적 파장에 대해 다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외환은행의 주주와 예금자들, 외환은행의 후순위채를 매입한 투자자, 공적자금을 부담한 일반국민들은 과연 이같은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되묻고 싶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투신상품과 신탁상품의 손실보전에 투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장전체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비상수단이었다. 손실이 발생하면 고객이 이를 감수하고, 손실이 초래되도록 펀드를 운용한 운용사는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바로 시장원리다. 이같은 시장원리 작동을 더이상 미루어서는 안된다. 수시로 실적상품에 대한 손실보전이 이루어진다면 고객들도 장차 손실감수를 전혀 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금융기관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이래서는 우리 금융시장이 선진화될 수 없으며 외국으로부터도 좋지 않은 평가를 자초할 것이다.


비록 외환은행에서 문제가 된 하이닉스 회사채 편입금액이 고유계정 이익규모에 비해 무시할 만큼 적다고는 하나 이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은행 주주들의 반발도 예상되며 하이닉스 채권을 편입하고 있는 다른 금융기관들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은행 고유계정의 건전성을 감독해야 하는 금융감독원도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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