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고객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각종 수수료 인상에는 발빠르게 나서면서도 정작 각 은행에 맞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신상품 개발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각자의 강점에 맞는 상품으로 고객을 유인하기보다는 다른 은행의 상품을 적당히 베끼거나 내용만 약간 수정하는 식의 ‘안일한’ 영업관행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이 신상품 등 기술 경쟁력 향상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수수료 인상 등 편안한 영업행태를 개선하지 않는 한 글로벌 경쟁시대에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2일 은행연합회와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중·지방 은행 및 농·수협 등 국내 19개 금융기관이 출시한 금융상품은 모두 200건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신상품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신설된 신상품 심의위원회에 상품 보호 심사를 요청해온 건수는 17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은행들이 출시한 금융상품 대부분이 경쟁 은행의 상품을 적당히 베끼거나 기존 상품에서 내용만 약간 바꿔 출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상품 심의위원회는 지난 2001년 12월부터 시행된 ‘은행 신상품 선발이익 보호 규약’에 따라 은행들이 출시한 상품중 독창적인 신상품을 심의, 해당 상품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지난해 1월부터 이달 9일까지 은행권에서 출시된 신상품은 모두 120건으로 파악되지만 중복된 상품이나 은행들이 대외에 알리지 않은 상품까지 합치면 200건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은행별로 보면 지난해 우리은행이 17건의 금융상품을 출시해 가장 많은 상품을 내놨고 신한은행이 15건을 출시했다. 다음으로는 기업·국민(각 14건), 조흥·외환(각 10건), 하나(9건), 농협(8건), 한미은행(7건) 등의 순이었다. 지방은행으로는 부산·대구은행이 각각 4건으로 가장 많았다. 제일은행은 지난해 단 2건의 상품만을 출시해 선진 금융기법과 상품을 전파하겠다던 대주주 뉴브리지캐피털의 공언을 무색케 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신상품은 기업으로 생각해 보면 경쟁력의 핵심인 신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며 “국제 경쟁 시대에서 상품개발에 노력을 쏟지 않으면 선진 금융기관들과 결코 경쟁할 수 없다”고 말했다.
/ dhlim@fnnews.com 임대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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