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기업 소설-에덴의 북쪽] 서랍 속의 반란 ⑬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3.06 09:12

수정 2014.11.07 18:43


“물론 아니죠… 하지만 선배님 앞이니까요.”

“뭐라구?”

“선배님 아니면, 어떻게 이런 얘기를 입 밖에 낼 수 있습니까? 선배님이니까, 마음놓고 속을 털어 다 뱉어버리는 거죠. 이럴 때… 선배님이 술 한잔 사주실 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몽땅 풀어버린다 그 말입니다.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선배니임… 끄억….”

주석민의 혀가 일순 굳어진다. 취기의 혼돈이 저처럼 극적으로 휘몰아칠 수 있는 것일까.

이튿날 아침, 강선우는 눈을 뜨자마자 쫓기는 사람처럼 웅철이 놈 핸드폰 번호부터 찍는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녀석을 만났어야 했는데… 아니, 만남의 기쁨을 배가시키기 위해 예고없이 불쑥 찾아가 깜짝 놀라게 해줄 속셈이었는데….

이를테면 공차는 연습장이나 시합하는 운동장에 숨어 천연덕스럽게 구경하다,

“야, 웅철이 너 제법이구나.”

하며 어깨라도 툭 쳐줄 요량이었는데… 그래서 하고 싶은 전화 통화를 간신히 억제했었는데… 강선우는 웅철이 놈의 칼칼한 목소리를 기대하며 벨소리를 연달아 보냈지만,

“없는 국번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십시오.”

라는 멘트가 툭 튀어나온다. 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어 다시 걸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강선우는 아침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렌트한 승용차의 방향을 동남대학 축구부 쪽으로 잡는다.


축구 연습장은 썰렁하다. 연습하는 선수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동남대학 축구부라고 쓰인 청색 버스가 굳게 문을 닫은 채, 한켠에 서 있는데도 운동장은 텅 비어 있다.

연습장을 한 바퀴 돈 다음, 강선우는 사무실 문을 두들긴다. 직원인 듯싶은 젊은이가 두 다리를 책상위에 걸어 놓고 눕듯이 앉아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도넛을 �/�/, 허공에 띄우고 있다.

“실례합니다.”

강선우가 말한다.

“예, 어디서 오셨죠?”

“사람을 찾는데… 한데 오늘은 연습이 없습니까?”

“연습요?”

젊은이가 끝이 다 된 담배를 아쉬운 듯 더 깊이 빨았다가 내뱉으며,

“연습은 이제 없습니다.”

하고 빈정거리듯 대답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축구부가 해체됐다 그 말입니다.”

“해체됐다구요?”

“그렇습니다.”

그제야, 피우던 담배 꽁초를 바닥에 내던지고, 그것을 뒤꿈치로 북북 눌러 짓이기며, 말을 잇는다.

“선수 면회를 오셨다면 집으로 돌아가십쇼. 어제 저녁, 뿔뿔이 다 헤어졌으니까요.”

“아니, 축구부가 왜 해체됐죠?”

“구조조정이랍니다.”

“구조조정?”

“재단 사무국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답니다.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동남대학 축구부를 해체한다구.”

“동남대학 재단 사무국이라면….”

“동남그룹 종합기획실 지시를 받는 곳이 재단 사무국 아닙니까? …모르겠습니다. 재단이 하는 일이 항상 그런 식이니까요. 돈 뭉텅이 들고 선수 스카우트할 때는 언제고, 돈줄 막힌다고 축구부까지 해체할 때는 또 언젠지….”

알 만하다. 지금 모든 계열사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그 정리해고 바람이, 동남대학 축구부에까지 불어온 모양이다.

“형씨는 축구부 직원입니까?”

강선우가 묻는다.

“예, 축구부 관리를 맡고 있는 권대립니다. 하지만 저도 어제 날짜로 짤렸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렇군요.”

강선우가 정색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말한 해고에 대해 뭔가 위로의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젊은이가 묻는다.


“한데, 선생은 누굴 찾아 오셨습니까?”

“선수 중에 구웅철이라고 아시는지?”

“구웅철이오?”

젊은이의 눈이 번쩍한다.

“구웅철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한데 웅철이 하고는 어떻게 되십니까?”
/백시종 작 박수룡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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