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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소설-에덴의 북쪽] 절벽 앞에서 ⑧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01 09:27

수정 2014.11.07 17:49


그래도 위험 천만의 위기를 몇차례 겪는다. 하지만 전반전에서처럼 찼다 하면 골문으로 쉽게 빨려 들어가는 허망한 골은 터지지 않는다.

그렇게 반시간이 흘렀을까, 정확히 20여분 남기고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아니 강선우의 손에 장을 지지지 않으면 안 되는 놀라운 상황이 눈앞에 전개된 것이다.

역시 구웅철이다. 웅철이는 입만 살아서 삼촌 걱정하지마, 후반전이 있잖아…라고 허풍이나 떠는 놈이 아닌 것이 백일하에 밝혀진 셈이다.

녀석의 지그재그 돌파력에 이은 논스톱 중거리 슛이 상대의 골문을 통렬하게 흔들어 놓은 것이었다.


정말 아무도 예상 못한 첫 골이다. 설마 그 지점에서 슛을 쏘겠냐는 방심한 수비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은 정확히 포물선을 그으며 백제팀 골대 밑을 비행, 맹렬하게 꿰뚫어버린 것이었다.

골을 성공시킨 구웅철 놈이 운동장 가운데서 팔딱팔딱 몸을 뒤집는 재주를 넘는다. 소위 말하는 골 세리머니다.

“야, 구웅철 최고다!”

“빅토리 구웅철!”

열 사람도 안 되는 동남 응원단들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른다. 강선우도 그 일행 속에 끼여 함께 소리소리 질러 마지않는다.

3대 0과 3대 1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갑자기 힘이 솟구치는지 선수들 모두가 기고만장이다.

그렇게 안되던 패스도 척척 들어맞고, 드리블도 상대팀 다리 사이로 끼어넣는 재주까지 구사할 정도다. 자고로 공이 상대 문전에서 놀면 반드시 찬스는 오기 마련이다.

비전문가인 강선우가 봐도 축구는 역시 게임 메이커가 좌우하는 것 같다. 그날의 게임 메이커의 활약이 얼마나 뛰어나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고 해야 옳다.

누가 뭐래도 동남의 골 게터는 구웅철이다. 뛰어난 돌파력과 화려한 드리블, 정확한 킥 능력으로 여러 차례 상대 문전을 위협하고, 그토록 강력하던 백제팀을 갑자기 비상이라도 걸린 듯 기세를 펴지 못하게 만든다.

신들린 선수라는 어휘는 바로 구웅철을 두고 쓰는 말이다. 뭐랄까. 흡사 포르투갈의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 상대팀에 3대 0으로 끌려가다가 혼자 5골을 내리넣고, 결국 3대 0을 5대 3으로 뒤집어 버린 성난 검은 표범.

물론 구웅철이 5골이나 내리 성공시킨 것은 아니다. 이날 구웅철은 정확히 해트트릭을 기록한다. 두번째 골은 문전에서 혼전 중 뒤로 돌아서면서 느닷없이 쏘는 백 슛으로, 마지막 세번째 골은 공중에 떠 있는 공을 양발을 동시에 들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은 동작으로 슛하는 바이시클킥으로 성공시킨다.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아름다운,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세골을 연거푸 기록한 것이다.

더구나 웅철이 놈의 팔딱 뒤집기 골 세리머니를 두 번씩이나 더 볼 수 있다는 것도 구경꾼에게는 행운중의 행운이다.

어디 그 뿐인가. 마지막 세번째 골도 3분을 남기고 터진 것이라서, 더욱 극적인 재미를 더한다. 말 그대로 3대 3이다.

다급한 쪽은 백제대학 감독이다. 그토록 거만하던, 그래서 게임 지시도 하지 않고 잡담만 주고받던 감독이 혼비백산 벌떡 일어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 이 새끼야, 그걸 공이라고 차는 거야! 상대팀은 오합지졸이야!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놈들이란 말이야!하고 외친다.

왜 그걸 몰라? 겁먹지 말고 연습대로만 하란 말이야! 야 이 맹추야! 서저스 패스도 몰라! 혼자 공을 갖고 있지 말고 어시스트하란 말이야, 어시스트!

3분을 남겨 놓고 부랴부랴 2진급을 빼고 백제팀의 최고 골 게터를 집어넣어 보지만, 이미 전운은 기운 뒤다.
아무리 날고 기는 게임 메이커라고 해도 벌써 기고만장해질대로 기고만장해진 동남의 수비진을 정해진 3분으로 유린하기는 역부족이다.

3대 3 스코어에서 심판의 종료 휘슬이 삐이삐이 울렸을 때, 강선우는 응원단 겸 팀 관계자들처럼 운동장 가운데로 뛰어나간다.
그리고 웅철이 놈을 얼싸 안는다.

/백시종 작 박수룡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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