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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株價가 바꾼 영국 부자순위


‘2003 영국 부자 리스트(Rich List).’ 영국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의 일요일판 신문인 선데이 타임스에서는 지난 4월27일 영국의 재산가 1000명을 발표했다.

올해 1위를 차지한 인물은 영국에서 손꼽히는 귀족인 웨스트민스터 공작. 그로스베너 그룹의 총수인 그의 총재산은 49억파운드, 한화로 약 10조원에 육박한다. 대부분 영국 및 전세계에 산재한 그의 부동산과 여기에서 얻어진 수익금이 주요 재원이다. 세계적으로는 35번째 갑부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영국의 부자 1호에 선정됐다.

그 뒤를 이은 사람은 48억파운드의 재산가로 알려진 한스 라우징. 스웨덴 출신의 식품 포장 및 가공업자로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테트라 라발 밀크 카톤(우유를 얼리지 않고도 신선도를 유지시킬 수 있는 종이 포장기술)의 발명자다.

이밖에도 전직 카레이서이자 포뮬러 원(F1)의 대표인 버니 엑슬스톤 부부, 하이네켄 맥주의 소유주인 샬렌느 드 카발로, 전설적인 외환 딜러인 조지프 루이스, 그리고 영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세인스버리’를 운영하고 있는 세인스버리경(卿) 일가 등이 10위권을 이뤘다.

여러 이색 기록들도 재미있다. 예를 들자면 영국 갑부들 중에는 남성이 절대적으로 많다. 최고 재산가들의 성비가 남성의 경우 1014명인데 비해 여성은 단 79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영국 재계의 큰손’은 대부분 남자란 의미다. 조사대상자의 총재산중 50%가 상위권 100명에 의해 독식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여성 갑부 리스트에도 별난 기록이 많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홉번째로 부상한 ‘해리 포터’의 원작자 조앤 롤링이 2억8000만파운드의 자산으로 마침내 2억5000만파운드의 영국 여왕보다 많은 재산가가 됐다는 점이다. 이밖에 가수 마돈나와 영화배우 캐더린 제타 존스, 대형 안경 체인점인 ‘스펙세이버’의 설립자 메리 퍼킨스 등도 상위권에 올랐다.

예술 문화계에서는 비틀스의 전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7억6000만파운드로 전체 순위 중 29위를 기록했으며,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작곡자로 요즘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앤드루 로이드 웨버(74위)와 뮤지컬 기획자인 카메론 매킨토시(100위)가 뒤를 이었다.

스포츠맨으로는 미남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5000만파운드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으며, 복서인 나심 하메드와 또다른 미남 축구 선수이자 대표적인 골잡이인 마이클 오언이 그 뒤를 이었다. 서른 이하의 갑부 리스트에는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두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가 등장했으며(2800만파운드), 27세의 미녀 영화배우 케이트 윈슬렛, ‘천사의 소리’라는 별명을 가진 팝페라 가수 샬롯 처치(17세) 그리고 지난 11월 복권에 당첨돼 순식간에 200억원대의 재산가가 된 마이클 캐롤(19세)이나 칼 크롬톤(30세)도 합류했다.

영국 갑부들의 직업은 무엇일까.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철강회사 운영 혹은 엔지니어링, 은행가와 재무가, 건설업자, 미디어와 텔레비전 재벌 및 출판업자 등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대적으로 인터넷 사업가나 건강관련 사업, 운송업자들은 그 수가 적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재산이 늘어난 사람들의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재산이 줄어든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이유에서 피해를 봤다는 점이다. 바로 주식 가치의 하락이다. 세계 주식 시장의 위기가 영국 갑부들의 순위를 요동치게 만든 셈이다. 가장 많은 손실을 기록한 사람은 세인스버리경 일가. 작년 한해 동안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15억파운드의 자산손실을 기록했다. 대규모 의류 체인점인 ‘마탈란’의 창립자 존 하그리브스 일가나 은행가인 로디 플레밍 일가, 프랑스 통신업체 ‘알카텔’의 대주주 테리 매튜스경도 같은 이유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당분간 주식 시장의 난조로 인한 영국 부호들의 순위 바뀜은 계속되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해마다 남의 주머닛돈 드나드는 사정을 살펴보는 영국 언론의 부자 순위 매기기는 우리에겐 확실히 이색적인 풍경이다.
돈 좀 있다고 하면 처음부터 색안경끼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진감 넘치는 골프 경기처럼 룰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경제도 재미있는 스포츠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지구촌 반대 쪽에선 그 게임의 승자가 사회적으로도 존중받고 공개적인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원종원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