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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로에 선 ‘SK 대책’


지난 99년 국민의 정부는 부당내부거래조사,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등 재벌의 ‘선단식 경영’에 메스를 가하기 위한 잇단 조치를 내놓았다. 발칵 뒤집힌 재계는 ‘기러기론’으로 맞섰다. 외국 대기업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기러기 떼처럼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서로 보호해 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었던 전윤철 전 부총리는 이를 반박할 논리로 ‘병든 기러기론’을 주창했다. “병든 기러기를 끌어안고 가는 기러기 떼는 태평양을 횡단할 수 없다”는 것.

선단식 경영을 지양하고 부실기업을 시장서 퇴출해야만 우량기업까지 덩달아 망하는 우(愚)를 피할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김대중 정부는 이같이 거센 저항을 뚫고 나름대로 재벌개혁을 지휘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분식회계로 얼룩져 곪은 환부를 시장에 드러내며 수술대 위에 누워 버린 SK사태는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SK글로벌은 지난달 30일 자본잠식규모를 3조4173억원이라고 밝혔지만 채권단은 전체 부실규모를 4조∼5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5월중 나올 회계법인의 실사결과는 재차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전망이다.

앞서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알 수 있는 (한국의) 미약한 기업지배구조는 외국자본의 유출을 야기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경고한 점도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외국인투자가의 눈빛을 그대로 보여준다.

채권단은 전체 부실규모가 확정되는대로 SK그룹의 지원방안까지 입체적으로 고려해 SK사태를 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계열분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둘 경우 돈은 받을 수 있지만 부실이 커질 우려가 있어 신중하게 처리해야”(이덕훈 우리은행장), “회생을 위한 그룹 내부지원은 부실을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에 불과”(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SK사태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출범 초 장담했던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경제개혁의 ‘탈선’도 시간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금 ‘병든 기러기’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 lmj@fnnews.com 이민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