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 ‘국민연금 민영화’ 문제없나 /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이연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05 09:28

수정 2014.11.07 17:48


최근 공적연금제도인 국민연금의 재정부실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40년경에 이르면 국민연금기금의 고갈로 인해 가입자들이 행여 약속한 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있고 정부가 이런 사회일부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대중매체를 동원해서 홍보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조심스럽게 공적연금제도의 민영화방안마저 제시되고 있다.

이미 1970년대 후반 칠레가 연금재정의 적자로 인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공적연금제도의 민영화라는 충격적인 수단을 택한 이래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민영화가 연금제도의 개혁방안으로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런 논의는 주로 젊은 근로자들이 납부하는 수입으로는 노년층의 급여마저 충당할 수 없어 근로자들의 부담이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유럽과 남미 및 30여년 후에 기금고갈이 예상되는 미국 등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공적연금제도 민영화의 내용은 무엇이며, 과연 민영화방안이 현행 제도를 대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는가. 민영화가 노후생계를 책임지는 연금제도의 개혁방안이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연금제도의 민영화방안에 대한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령연금의 민영화는 논자들마다 각기 다른 모습의 방안들을 가지고 있으나 대체로 몇가지 중요한 공통점들을 갖는다. 우선 재정방식에 있어 현행의 부과식에서 기금식으로 재정방식 전환이 가장 중요한 골격을 이루고 있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나라들이 시행하는 연금제도에서는 노후에 받게 될 연금급여의 수준을 미리 결정하는 확정급여방식이었으나 민영화방안에 따르면 급여수준은 연금기금의 운용수익에 따라 사후에 결정되고 연금보험료만을 미리 결정하는 확정기여금 방식으로 전환이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가입자들이 납부한 연금기금은 정부가 일률적으로 운용하던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의 자산운용사에게 일임한다는 특징을 가지며, 연금 가입자들이 각자의 연금적립금이 투자되는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내용도 가지고 있다.

공적연금제도의 민영화방안은 무엇보다도 국민경제의 커다란 재정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연금재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유럽과 같이 경제통합과 더불어 노동시장의 통합으로 인해 각국의 근로자들이 자유롭게 근로와 노후생활의 지역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현행의 국가별 공적연금제도하에서 나타나는 비용부담과 급여수준의 산정에 따른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연금제도를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일한 비용부담만으로도 효율적인 금융시장에서의 자산운용을 통해 연금급여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그러나 연금제도의 민영화는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서는 커다란 제약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민영화방안에서는 사회보험제도가 갖는 중요한 역할인 소득재분배 기능이 매우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현행 연금제도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연금생활자를 보호하는 반면, 물가상승에 연동한 투자상품들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민영화 방안이 연금생활자의 실질소득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리고 연금가입자들의 책임 아래 시행되는 연금적립금의 투자가 평균수익률면에서는 현행제도의 수익률에 비해 높다는 실증자료를 이용한 시뮤레이션 결과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따른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문제를 갖는다.

투자수익의 여부에 따라 연금급여가 현행제도에서 보장하는 급여의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나는 경우 서민들의 노후생계의 보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연금제도 개혁의 중요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민영화는 아직은 현실적으로 공적연금제도를 대신하는데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처럼 주식과 회사채의 수익률 등 중요한 금융상품에 대한 신뢰할만한 자료축적이 없는 우리에게 민영화방안은 특히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제도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고, 금융투자에 이해와 훈련이 부족한 현실에서 볼 때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먼 개선방안일 뿐이다.

/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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