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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IT후진국’ 탈피 시도하는 일본

최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06 09:29

수정 2014.11.07 17:46


일본이 한국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고속통신망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이른바 ‘브로드밴드’ 분야일 것이다. 일본의 통신네트워크는 품질과 신뢰성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했지만 90년대 중반 인터넷시대에 들어서면서 통신속도와 요금면에서 ‘정보기술(IT) 후진국’이라 불리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인터넷보급이 확대되면서 IT선진국 진입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월말 현재 비대칭 디지털 가입자회선(ADSL)을 중심으로 한 고속통신서비스 가입자가 700만명을 돌파했으며, 매월 40만∼50만명 규모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 무선LAN 서비스와 동영상을 빠른 속도로 송수신할 수 있는 제3세대 통신 네트워크도 빠른 속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1년초 발표된 일본정부의 ‘e재팬’ 계획은 5년 이내에 3000만 가구가 고속인터넷접속을, 1000만가구가 초고속인터넷접속을 저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고속접속은 전송속도가 10Mbps 이상을, 초고속접속은 초당 30Mbps이상을 말한다.

일본의 경우 통신네트워크의 디지털화가 이미 완성된데다,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이르는 간선망은 거미줄처럼 광파이버 네트워크로 형성되어 있다. ‘e재팬’은 이같은 간선망과 각 가정을 광파이버나 ADSL, 케이블TV망 등으로 연결시키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브로드밴드 분야가 최근까지 ‘후진’을 면치 못한 가장 큰 원인은 통신망을 독점해온 NTT의 관료적이고 경직된 사고방식이나 경영방침이 지적되곤 한다. NTT는 일본전신전화공사 시대인 80년대부터 광파이버 연구를 추진, 90년을 전후해 중계 계통회선에 광파이버를 도입, 전화국간을 연결하는 기간네트워크를 차례치례 광파이버로 교체했다.

그러나 NTT는 전화국에서 가정까지를 광파이버로 연결하는 이른바 ‘마지막 1마일’의 벽에 부딪치면서 브로드밴드의 실제 보급이 늦어지고 말았다. 높은 공사비용 이외에도 일본의 경우 한국에 비해 고층아파트가 적은데다, 아파트 주민의 합의를 얻으려면 수개월이 걸리는 등 복잡한 절차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본 브로드밴드 확산에 불을 붙인 것이 지난해부터 소프트뱅크가 실시한 저가ADSL 서비스였다. 소프트뱅크는 당시 월 5000엔 수준이었던 ADSL서비스 정액요금을 2000엔대라는 경이적인 가격으로 끌어내려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4월말 현재 236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ADSL 서비스가격 인하경쟁을 촉발, NTT동일본과 NTT서일본도 총256만 가입자를 모으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일본에서 저렴한 서비스가 가능했던 것은 일본 총무성 및 통신업계에서 NTT를 견제하기 위해, NTT 회선을 타사에 빌려주는 ‘언번들’이나 NTT전화국내에 ADSL용 설비를 놓는 스페이스를 사용하는 ‘코로케이션’ 등을 받아들이도록 환경을 조성한데서 비롯됐다.

반면에 일본의 대표적 통신업체인 NTT는 통신업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기존 고정전화부문은 이미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처리(IP)전화에 의해 크게 잠식당하기 시작한 데다, 컴퓨터 고속통신네트워크 부문에서는 야후 등의 저가ADSL에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NTT는 기존 고정전화망에 대한 투자를 중지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11월에는 ‘고정전화수입은 5년 동안 1조엔 감소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따라, 감소분을 브로드밴드 사업으로 만회하겠다는 전략을 천명했다.

전화 이용자들이 기존 아날로그 회선에서 종합정보통신망(ISDN)으로, 그리고 다시 ADSL로 옮겨가는 등 보다 빠른 속도의 서비스를 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광파이버를 각 가정으로 연결해 고속통신인프라를 구축하는 FTTH(Fiber To The Home)이야말로 마지막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ADSL은 전화국에서 멀리 떨어진 가입자의 경우 이용 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데다 수신속도에 비해 송신속도가 늦은 단점이 있는데 비해, FTTH서비스는 이런 문제를 모두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NTT동일본은 지난 4월1일부터 5대까지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FTTH서비스 정액요금을 5800엔에서 4500엔으로 낮추고, 서비스 대상지역도 확대하고 있다. 이와함께 도쿄전력도 도쿄를 중심으로 저가 광파이버 서비스 캠페인을 실시하는 등 이 부분에서의 경쟁도 치열해질 조짐이다.


그러나 현재 FTTH 가입자는 26만명 수준에 불과한데 비해 ADSL가입자는 소프트뱅크 등의 공세로 계속 늘어나고 있어, 당분간 일본 브로드밴드 시장은 ADSL중심으로 꾸준히 확대될 전망이다.

/장인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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