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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1, 2] ‘교훈의 전당’ 톨스토이와 감동 여행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08 09:29

수정 2014.11.07 17:44


올해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가 탄생한지 175주년이 된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쓴 작가, ‘나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의 에세이를 통해 짜르 정부의 폭정을 비판한 사회정치평론가, 사유재산의 철폐와 반전 및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주창한 사회활동가, 휴머니즘에 기초한 기독교 이론을 정립하고 실천한 종교사상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쓴 문예이론가로서 톨스토이가 인류문명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톨스토이가 거의 평생동안 관심을 갖고 실천한 교육 부문의 활동, 즉 교육자로서의 톨스토이의 삶과 활동에 대해선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1847년 톨스토이는 카잔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와 농사관리와 농민생활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가 마침내 1861년에 고향에 농민학교를 세우고 농촌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야스나탸 폴랴나’란 교육잡지를 발행하게 된다. 어린이 교육에 관한 톨스토이의 관심은 어린이들 스스로가 쉽게 읽고 쓰고 즐길 수 있는 교과서(‘러시아어 알파벳’ ‘새로운 러시아어’ ‘러시아어 독본1-4’)의 집필로 이어졌다. 톨스토이는 세계와 러시아의 민담과 동화 등을 짤막하게 개작한 이른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들’(동화, 민담, 우화, 실화, 동·식물 이야기, 역사이야기)을 써서 교과서에 실었다.
이 이야기들은 이미 우리말로 번역되어 많은 어린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에 MBC 느낌표의 ‘책책책을 읽읍시다’의 책으로 선정되어 많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톨스토이 단편선1,2’(박형규 옮김)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들’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또한 어린이와 민중 교육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삶을 위한 글쓰기와 글읽기를 실천하고자 했던 톨스토이의 노력의 산물이기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1870년대 말부터 세계와 러시아의 옛이야기, 전설, 우화, 복음서의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형식과 내용으로 다시 풀어 써 ‘민화’(narodny rasskaz)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다. 그 결과 복음서와 민간설화와 전설 등에 기초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노인’ ‘바보 이반’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머슴 에멜리안과 빈 북’ 등은 톨스토이의 손끝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삶의 교훈과 지혜를 안겨준다. 일반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고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민화의 ‘단순한 형식과 간명한 내용’의 추구는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에서 만년의 톨스토이가 강조한 진정한 예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톨스토이의 ‘민화’가 이 땅에 번역·소개된 것이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톨스토이의 ‘민화’는 이미 부분적으로 30여개의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혀졌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영어와 일본어에 의한 중역이었고, 게다가 오역, 오자, 탈자, 지나친 윤문 등으로 원문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톨스토이의 번역과 연구에 평생을 바친 박형규 교수의 ‘인디북’판 민화 번역은 원서에 의한 정확한 번역, 그동안 우리가 읽지 못했던 톨스토이의 새로운 민화의 발굴(‘딸기’ ‘기도’ ‘코르네이 바실리예프’)과 그 최초의 번역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역자의 거친 듯 하면서도 독특한 번역 어투와 적잖은 시간을 들여 찾아냈을 아름답고 풍성한 우리말(바늘겨레, 다룸가죽, 운두, 앞섶, 우죽)과의 만남은 책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이항재 단국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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