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진기자의 Movie inside] 실미도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08 09:29

수정 2014.11.07 17:44


잘못하면 영화감독 강우석이 스님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 발생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며눈이 희둥그레질 독자도 있을 법한 이 이야기는 영화 ‘실미도’를 찍고 있는 강감독 입에서 나왔다.강감독은 실미도에 미쳐있다. 그의 말에는 독기가 묻어 있다. 모든 걸 다 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강 감독은 지난 88년 ‘달콤한 신부들’로 데뷔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등으로 흥행감독에 올라선 후 95년 시네마 서비스를 설립해 제작자로 변신했다.
이후 막강한 배급력과 정확한 투자로 매년 흥행수익 1위를 달성하며 영화계에서 가장 파워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런 그가 모든 걸 다 걸고 있다면 보통일이 아니다. 그도 이 사실을 잘 아는지라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모두 팔고 속세를 떠날까 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속세를 떠난다’ 함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에 가깝다. 스님이 된다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설마 강감독이 흥행에 실패한다고 충무로를 뜰까? 모르는 일이다. 과거 유명여배우가 스님이 된 경우도 있으니 사람 일이란 알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나라 말에는 반어법이 있다.속세를 떠나겠다는 말에는 자신감이 함축돼 있다. 말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와 교도소에 있는 죄수 빼고는 (실미도를) 다 보지 않을까요?”

바로 이거다. 강감독 말투에서 다소 오만한 듯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자신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말머리에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빼놓지 않았다. 말하자면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며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반어법이었던 것이다.그런데 맙소사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의 사촌이 ‘속세를 떠난다’란 말이란 걸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야 생각이 났다. 한방 먹은 셈이다.


그런데 그가 약속을 어긴 말이 생각났다. 영화 ‘공공의 적’ 이후 “감독을 그만 두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쯤되면 영화가 실패하면 속세를 떠나지는 않는다하더라도 감독은 다시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감독 이쯤되면 막하자는거지요?

/ pompom@fnnews.com 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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