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동수상응’ 정책이 아쉽다

송계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12 09:30

수정 2014.11.07 17:42


우리나라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받는 취미활동을 든다면 ‘바둑’이 단연 으뜸일 것이다.

바둑 애호가들은 바둑을 둘 때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할 교훈으로 주저없이 ‘위기십결(圍棋十訣)’을 꼽는다. 바둑을 잘 두기 위한 10가지 비결, 즉 ‘바둑의 10계명’인 셈이다.

이 가운데 ‘동수상응(動須相應)’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에서 이기려면 모름지기 이쪽저쪽이 서로 연관되게, 또 서로 호응하도록 해 대국 분위기를 내쪽으로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맥을 잘 짚어야 이긴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정책은 바둑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정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초보자 티를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다.

당장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는 위기관리 체계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는 데도 그동안 수수방관만 하다가 곪아 터진 뒤에야 허둥지둥하다 수출 대란을 불러왔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시작한 지 10여일이 지나서 내놓는다는 대책이 고작 워닝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원론적 입장의 반복이었다.

결과적으로 불법행위가 계속됐고 수출입 화물의 운송차질 등 수출대란으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발생했다.

화물연대 포항지부의 파업으로 포스코에서만 1000억원대의 손실이 발생했고 현재 파업이 진행중인 부산항과 광양항 수출입 화물 반출입 차질로 수출입은 물론 국내 산업활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산항과 광양항 마비사태가 지속되면서 수출화물을 제때 선적하지 못한 국내 기업의 해외 신뢰도 추락은 불보듯 뻔하다. 게다가 외국 선사들의 국내 항만 이탈도 우려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정부의 안일한 접근과 대처능력이 결국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부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와 운송노조는 12일 서울 공덕동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마라톤 협상 끝에 6개안의 노·정 합의안을 도출, 해결의 실마리가 잡은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고 하겠다.

정부는 앞으로 이번 화물연대 파업사태와 같이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범정부적 차원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상황을 관리하고 대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조기 수습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사후 약방문이긴 하지만 뒤늦게나마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부 대책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도 앞으로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파업이 처음 시작됐을 때 건설교통부와 노동부, 재정경제부, 산자부 등은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사태해결은 초기 대응과 이해당사자간의 원만한 합의가 중요하다.

그러나 어려운 대내외적 경제상황에다 국가 산업활동이 마비상황에 빠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정부가 부랴부랴 개입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협상을 이끄는 협상 기술도 한계를 드러냈다.

바둑은 한번 지면 다음에 다시 두면 된다. 또 바둑에서 졌다고 해서 생활이 뒤틀리고 국가 전체가 위험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의 고수들은 한수 한수 둘 때마다 목숨을 건 것처럼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하물며 국민의 생계가 달려 있고 국가 전체를 위기로 내몰 수도 있는 물류 문제를 너무나도 쉽게 다뤄서야 되겠는가.

노무현 정부가 경제정책의 초보자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정책 하나 하나에 혼을 담아 내야 한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사태를 노무현 정부는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노측에도 사측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한 정책이 두고두고 약효를 낸다는 사실을 염두하길 바란다.

/송계신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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