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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거인-한국도자기 김동수 회장] 남의 돈 안쓰고 60년 도자기 외길


영국에 웨지우드,일본에 노리다케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국도자기가 있다.

세계 5대 도자기업체로 꼽히는 한국도자기는 보수적인 업체로 손꼽힌다. 60년의 기업 역사를 자랑하지만 계열사는 로제화장품 수안보파크호텔 등 겨우 8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 업체를 들여다 보면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업체에게 빚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기업을, 더구나 그분야 최고의 기업을 운영하는데 빚을 한푼도 지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자본주의의가 일천한 관계로 기업의 자본축적이 어려웠던 국내 실상이 그 첫번째 이유고, 그동안 국내 경제계를 휩쓴 성장만이 최고선이라는 소아병적인 구호속에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게 그 둘째 이유이다.

김동수 회장은 한국도자기의 창업주는 아니다. 일제 강점기인 1943년 김 회장의 선친인 김종호 회장은 충북 청주에 그릇 굽는 조그만 가마터 하나를 놓고 남주동 시장에서 5평 남짓한 그릇상점을 차렸다. 한국도자기 탄생은 바로 이곳에서 이뤄졌다.

김회장은 중학교 시절부터 남주동 시장 그릇상점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방과후면 매일 그릇을 판매하시는 어머니를 도우면서 도자기와 인연을 맺었다.고 3때는 대입시험을 위해 학업에 전념했다. 그 결과 청주고교에서 문과 1등으로 졸업, 연세대 경제학과를 무시험으로 합격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59년 유학을 준비중이던 그는 부친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릇점이 어려우니 회사일 좀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원래 제 꿈은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편지를 받아들고 곧바로 내려 갔지요.”

꿈을 접고 회사로 내려와보니 40여명 남짓한 직원들의 급료는 3개월이나 밀려있었고 사무실에는 여자 경리직원과 소사 한명이 고작인 데다 지저분한 화장실에 부채장부만이 널려있었다. 명색이 사장 아들이 왔는데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안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업무지시가 통할리 만무했다.

김회장이 맨 먼저 한 일은 화장실 청소. 그 이후에 직접 그릇을 만들기 위해 흙을 이기는 방법을 배우고 짚과 새끼줄로 완성된 도자기를 포장하는 것까지 경영자 수업을 시작했다.

경제학도 출신인 그였지만 매달 매출의 40%씩 이어지는 사채와 은행빚 이자를 물어내기란 죽기보다도 어려웠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기도했습니다. 빚을 갚아주고 차라리 제 영혼을 데려가 달라고 ….”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그릇을 차에 싣고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판매도 하고 수금도 했다. 어려운 회사 살림에 그릇빚기, 판매?^수금 등 모든 일이 쉬운 것 하나 없었다.

“60kg나 나가던 몸무게는 48kg까지 떨어지고 밥상의 간장,고추장이 온통 헛 것으로서 보였습니다.”

빚은 14년 후인 1973년이 돼서야 말끔히 처리됐다.

이 때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김 회장은 절대로 남의 돈을 쓰지않는다. 은행등 금융권에서 돈을 써달라고 찾아와도 그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빚을 갚으면서 김 회장은 많은 것을 배웠다. 정성과 성실, 그리고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된다는 것을 신념으로 체화시켰다.

이러한 신념은 도자기 제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도자기는 원래 여러번 구울수록 무늬와 빛깔이 선명, 고급스러워진다. 그는 25시간의 초벌구이 과정을 세벌구이 과정으로 늘리고 맘에 안들면 깨뜨려버리는 무결점 제품만을 고집하며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 오는 7월이 되면 세상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세계 최고의 도자기제품이 한국에서 탄생합니다. 10년 후면 저희 제품이 세계 1위에 올라있을 겁니다.”

그는 그러나 무엇보다 회사 경영의 제1목표를 인간경영에 두고 있다.

원래 좋은 도자기를 빚을려면 ‘정성’이 담겨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정성이 담길려면 사원이 행복해야 되고 사원이 행복할려면 가정의 행복과 부모님에 대한 효도가 근본이라고 믿고 있다.

취학전 아동을 돌봐주는 성종어린이 집이나 상여금 외에 추석·설 명절에 지급하는 성과급이나 5월 가정의 달에 지급하는 효도비가 세계적 명품을 일궈내는 근간일지도 모른다.

◈ 김회장의 경영 노하우

김회장은 몸이 건강해야 모든 일에 의욕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올해 나이 66세로 곧 고희를 바라보지만 팽팽한 얼굴피부가 말해주 듯 나이답지 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물론 운동이다. 검도로 몸을 단련했다.

하지만 검도를 시작한 계기는 엄밀히 말해 체력단련 목적이 아니었다. 동네 건달들로 부터 회사 여성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960년대 초 처음 검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검도가 어느새 6단. 대한 검도회 회장과 세계 검도연맹 부회장을 각각 6년이나 맡을 정도의 고수로 변신했다.

아직까지 검도는 계속하지만 지금은 국선도와 함께 일주일 2∼3번 정도 필드에 나갈 정도로 골프에 매료됐다.

그는 운동이 건강과 회사발전을 유지시키는 비결이라고 믿고 있다.

◈ 한국도자기 걸어온 길 ◈

1943. 12 한국도자기 설립

1973. 3 국가산업발전유공자 대통령 표창

1976. 12 수출전용 제 2공장 준공(청주 제 1,2공단)

1982. 3 사원후생 복지관 준공,

1982. 7 본차이나 제 1공장 준공

1985. 12 사원 실내 체육관 준공

1986. 3 종합디자인센터 준공

1990. 9 본차이나 제 2공장 준공

1994. 4 중앙연구소 준공

1999. 7 월드베스트상(World Best Awards) 수상

2000.12 디자인 경영 대통령상 수상

2003. 3 2003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 1위(한국능률협회 컨설팅)

/ dikim@fnnews.com 김두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