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 대출시장의 시장규율 / 안세일 한국은행 총무국 국장

이연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14 09:31

수정 2014.11.07 17:41


최근 급격한 가계부채의 증가와 함께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는 등 가계부문의 신용이 악화되고 있다. 가계대출시장은 2002년 들어 저금리, 주택가격 상승기대 등에 기인하는 가계의 주택자금수요, 은행의 기업대출 둔화로 인한 대출여력 확대, 신용카드사의 외형경쟁 등이 맞물려 급성장했다. 특히 신용카드업계는 최근 2,3년간 매우 빠르게 신장되어 왔으나 그 과정에서 청소년 등 신용 취약자에 대한 카드발급 등 신용관리 미흡, 과도한 현금서비스 운용으로 신용카드사 부실은 물론 다수의 신용불량자를 발생시켰다. 지난해 7월에는 신용불량자의 대량발생이 가계대출 부실을 증폭시키고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되면서 신용불량자 등록기준을 상향조정하는 등 시장규율면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가계대출의 급증과 연체율 상승은 광의의 신용개념인 익스포저를 높여 신용위험을 높이고 금융기관간 상호 익스포저에 의한 시스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또한 외형경쟁의 심화는 3개월 내지 1년 미만의 단기부채 비중을 높여 유동성 위험도 높여왔다고 하겠다.
최근 이러한 위험도를 완화하기 위하여 정부가 종합대책을 마련·시행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시장규율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원래 대출시장은 상품시장과 같이 거래가 1회성의 매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후 상환을 해야 완결되는 계약거래이고 차입자의 신용정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시장규율이 문란해지면 차입자의 역선택이나 도덕적해이 현상을 조장하는 속성이 있다. 역선택 현상은 차입자의 신용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금리가 높거나 담보요구 등 차입조건이 더 까다로워도 차입을 하려고 함으로써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차입자의 신용위험을 높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신용카드의 경우 신용불량자가 특히 많은 것은 은행 등에서는 금리는 낮지만 차입조건이 까다로워 접근이 용이하지 못해 카드회사나 여타 제2 금융권으로 몰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럴해저드 현상은 차입자의 경우 어차피 상환이 불가능할 경우 원리금 전액을 다 상환할 수 없기 때문에 금융기관이 금리를 높여 차입을 줄여 나가려고 할 때 차입자는 오히려 위험도가 높지만 수익성도 높은 데에 무리한 투자를 시도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고율의 금리나 수수료를 적용하기보다는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여신규제가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볼 때 시장규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금융시장의 속성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대칭적 정보 아래서의 금융시장에서는 역선택 현상이 나타날 소지가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신용상태가 낮은 차입자가 많이 몰리는 금융기관일수록 더욱 심하므로 감독당국은 이러한 금융기관에 감독기준을 차별화하고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금융기관은 모럴해저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부실이 증가할 경우 안일하게 금리나 수수료율만 높여 수요를 줄이려고 하는 것은 크게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무분별한 차입자를 끌어들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배려가 요구된다. 즉 차입코스트만을 높이려고 하기보다는 사전심사나 사후감시를 강화하고 신용공여 수준을 그때그때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보다 더 필요하다 하겠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개방화와 자율화가 본격화됨에 따라 기업의 은행대출 수요가 감소하는 가운데 은행은 여유자금을 활용하기 위하여 경쟁력이 취약한 유통, 부동산부문 등에의 대출을 확대하게 되었다. 금융기관들이 경영은 자율화되어 있어도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이 안되고 위험분석기법의 개발이 미비한 상태였다. 결국 담보위주의 대출에 치중하게 되고 부동산 가격의 대폭적인 하락은 채권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대출시장의 시장규율 미비가 가져온 결과라 하겠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지금 유통, 부동산, 건설, 금융 등이 부실의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우리의 경제상황을 감안해 볼 때 현재는 어느 정도의 경제회복을 도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렵게 이룬 구조조정을 토대로 각 부문에서 시장원리가 통할 수 있도록 시장규율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세일 한국은행 총무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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