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영 뉴욕포커스] ‘증시통합’ 시장에 맞겨야

송계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27 09:34

수정 2014.11.07 17:33


지난 16일 재정경제부가 확정, 발표한 증권, 선물시장운영체제 개편안을 놓고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정부의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는 공식 의견을 냈으나 코스닥 증권시장과 선물거래소는 정부 발표안이 일부의 입장만을 반영한 정치적 결정이라며 극력 반대하고 있다.

급기야 부산지역 시민단체들마저 정부안의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총력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비록 정부가 이번 최종안의 발표를 통해 거래소 단일 통합에 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으나 이에 따른 통합진행 작업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 군데로 독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거래소들을 하나로 통합 한다는 큰 그림만을 놓고 볼 때 증시의 효율성, 투자자들의 편의 제공, 거래비용 절감 등의 대의(大義)적인 득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증권시장의 지난해 말 시가총액이 각각 2158억달러와 312억달러로 세계 14위와 31위에 랭크되었음을 감안할 때 통합 후엔 10위권 안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거래량 면에서 주식선물 세계 4위, 옵션선물 세계 1위인 선물시장의 경우 ‘KOSPI 200’ 주식선물이 선물거래소로 이관되면서 시장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자국내 시장의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미국, 영국, 일본 등의 경우는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를 분리 운영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시장의 규모가 작고 역사가 짧은 유럽과 동남아 국가들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를 빠르게 통합하는 추세다.

따라서 이번의 통합안은 시장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추구한다는 국제금융시장의 추세에도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통합안이 미완의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통합거래소의 본사를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두기로 결정한 대목이다.

정부는 부산에 본사를 두는 것이 지방분권화와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상적 방안이며 정치적 고려는 없다고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산시와 시민단체를 달래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증권선물 투자자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실에서 거래소 본사를 서울에서 가장 먼 거리의 부산으로 옮기는 것은 시장의 효율성이나 시장 참여자의 편의라는 본래의 취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며 ‘중복 투자를 하겠다’라고 밖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같이 증권시장의 운영기능과 행정기능의 소재지를 분리한 형태는 세계에서 그 예를 찾기 힘들다.

증권거래소는 유럽통합 시장인 유로넥스트의 예를 들며 “본부는 프랑스에 있고 각국의 거래소는 분리돼 있어도 전산시설의 발달로 본부의 소재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유럽 4개국의 국가간 통합주식시장인 유로넥스트 사례를 단일 국가 내에서 시장이 통합되는 국내 사례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확정안은 앞으로 김포 매립지에 국제금융센터를 설치하기로 하는 등 서울을 동북아 금융중심으로 만들겠다고 참여정부 스스로가 정한 국정과제와도 거리가 있다.

국내외 투자자 대부분의 활동이 서울에서 이루어지는데, 증시에 관한 전략, 조사, 연구를 부산에서 하는 구조로 과연 한국 증시가 싱가포르, 홍콩과 경쟁할 효율성을 지닐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이같은 기형적 구조는 3개 시장이 통합되면서 생기는 비용절감과 시너지 효과를 갉아먹을 것이다.

동북아금융 중심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선 3개 시장을 통합하더라도 시장의 기능과 본사가 모두 그 나라 금융산업의 중심지에 위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미국을 비롯한 금융선진국들이 증권거래소 본사를 그 나라 금융산업의 중심지에 두는 이유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금융산업은 규모 면에서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시스템과 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보다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의 개발 등 증권시장 선진화에 필요,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증권시장의 개편이 지금과 같이 정치적 고려와 지역 이기주의에 휘말려 표류해서는 안될 일이다.


한국 금융산업의 백년대계가 걸린 거래소 통합 문제는 철저히 ‘시장’을 중심에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

/정삼영 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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