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기업 소설-에덴의 북쪽] 우리는 춤추러 간다 ⑬


지난밤 일찍 자리에 들었는데도 이처럼 늘어지게 자다니…. 하긴, 이틀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으니 워낙 피곤했던 거야.

“삼촌!”

용식이 목소리다.

“그래, 일어났다.”

“빨리 나오셔야겠는데요.”

“무슨 일인데?”

“코잔 어른께서 찾으시거든요.”

“그으래?”

강선우가 발가벗은 몸으로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선다. 200년 묵은 마로니에 거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실에 웅철이 놈이 앉아있고, 녀석의 등을 어루만지는 코잔 어른이 그 옆에 자리하고 있다. 베흐잣도 있고, 코잔의 부인인 뚱뚱보 마나님도 동석하고 있다.

“어서 오게.”

코잔 회장이 말한다.

“죄송합니다.”

강선우가 쥐구멍이라도 찾을 듯이 머리를 잔뜩 숙여 마지않는다.

“죄송하긴… 더 자게 두고 싶지만, 스케줄 때문에 깨웠어. 다른 게 아니고, 우리 지금 얄츤 회장을 만나러 갈 작정이거든.”

“예?”

“우리가 가족회의를 열었는데 말이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어. 뭘 통과시켰느냐 하면, 주마르그룹 호텔과 계약이 파기되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서 온 손자를 얄츤 회장에게 인도해 주기로 한 거야… 설사 밥줄이 끊어진다 해도 이 결심을 절대 번복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가족 전체의 뜻이야.”

강선우의 목이 콱 막힌다. 물론 감격 때문이다. 웅철이 녀석을 본다. 그냥 멀뚱멀뚱 녀석도 이쪽을 본다.

넌, 인마 억세게도 운이 좋은 놈이야. 강선우가 눈으로 말한다. 녀석이 그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씨익,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다 만다.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거야말로….”

“그래, 이거야말로… 모처럼 사람답게 사는 짓거리를 하는 것 뿐이야.”

“한데, 얄츤 회장님께서도….”

강선우로서는 얄츤 회장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가 무엇보다 관심사다. 코잔이 대답한다.

“새벽에 간신히 통화를 했지. 가파도키아에 있는 별장 휴양소에 계시더구만. 주치의랑 간호원들이랑… 노인네가 옛날 같지 않아.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셨어. 몇번 반복하지만, 정말 지금 잘온 거야. 한달만 늦었어도… 얄츤이 손자를 못 알아보게 됐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래, 얄츤 회장이 헬리콥터를 보내주시기로 했어.”

“헬리콥터를요?”

강선우가 큰 소리로 반문한다.

“그렇다니까. 열두 사람 타는 헬리콥터니까, 우리가족 다 같이 가도 자리가 남을 거야.”

강선우가 식탁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코잔 어른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연다.

“참, 한국 대사관에도 연락을 했어. 마침 대사님하고도 통화를 했는데, 가파도키아로 가기 전에 앙카라에 들러 대사님을 태우기로 했어. 이건 얄츤 회장의 특별 지시야.”

강선우의 휴대폰 벨이 울린 것은 헬기장으로 가는 베흐잣의 택시 속이다.

“여보세요.”

강선우가 전화를 받는다.

“나야.”

그레이스 최다.

“아, 예 강선웁니다.”

“나 말이야, 낼 아침 펜암으로 예약했어. 저녁 아홉시에 도착이야.”

“낼 저녁에 도착한다구요?”

“그래, 아홉시.”

“아니, 꼭 그렇게 빨리 오실 필요는 없는데….”

막말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그날 아침은 캄캄한 터널 안이었고, 지금은 뻥 뚤린 고속도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제 와서 올 필요가 있느냐고 너무나 쉽게 반문하다니, 강선우가 생각해도 얄망스럽기 그지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레이스 최도 벌컥 화를 낸다.


“지금 뭐라구 했어!”

“아, 아닙니다.”

강선우가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 말을 잇는다.

“아홉시 정각에 공항에 나가 있겠습니다.”

/백시종 작 박수룡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