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광장동 21번지 워커힐호텔. 아차산을 뒤로 하고 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권이압권인 이 호텔은 최근 주인이 바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뒤숭숭한 모습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기운이 다한 것일까, 최근에는 사스의 영향으로 외국인 투숙객마저 급감해 직원들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평화롭던 이 호텔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지난 3월, 최대주주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글로벌 사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호텔 지분(40.6%)모두를 담보로 내놓으면서 사실상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가면서부터다.
호텔을 접수한 채권단은 ‘SK글로벌 처리’라는 화두를 놓고 SK측과 협상해 가는 과정에서 SK자구안과 출자전환 규모가 미흡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여지없이 “워커힐을 매각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채권단에게 ‘SK글로벌 청산’과 ‘워커힐 매각’이라는 두 카드가 있다면 SK글로벌 청산은 다소 실현 불가능한 말 그대로 엄포용이지만, 워커힐 매각은 최 회장 일가를 긴장하게 하고 SK로부터 가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그도 그런것이 최 씨 일가는 워커힐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줄곳 호텔 뒷편 별장에서 머물렀고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최태원 회장도 선친의 ‘워커힐 사랑’을 이어받아 호텔 증축에 나섰다. SK건설이 워커힐 본관 옆에 최고급 호텔인 W호텔을 짓고 있는 것.
워커힐은 사실 본업인 숙박업보다는 카지노로 유명하다. 특히 일본과 중국의 도박 매니아들은 사스 충격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에 힘입어 올 1·4분기 워커힐 카지노의 매출액은 556억원, 순이익 122억원으로 지난해 보다 각각 1.7%, 8.2%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워커힐 카지노의 지난해 매출액은 2390억원에 순이익은 454억원. 반면 워커힐 연간 매출은 광화문 음식점과 면세점 등을 모두 합쳐도 고작 1800억원(2002년 기준)수준에 달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구조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워커힐 카지노의 주인인 파라다이스호텔이 워커힐을 인수할 것이란 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파라다이스 관계자는 “이미 공시에서 밝혔듯 워커힐 인수는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SK면세점과 호텔업계 주변에서는 파라다이스가 내부적으로 워커힐을 매입한다는 방침 아래 비밀리에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자금마련 계획을 수립했다는 주장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호텔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호텔과 신라호텔은 사스와 경기침체로 경영난이 심각해 워커힐 인수에 여력이 없지만 파라다이스는 현금동원능력도 있는데다 더욱이 호텔 안에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어 여건만 되면 매입해야 할 입장”이라고 말했다.
파라다이스는 카지노 방문고객들의 호텔 이용료와 임대료 등으로 연간 500억원 가량을 워커힐 측에 지급하고 있다. 최 회장의 워커힐 지분은 장부가로 약 1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 namu@fnnews.com 홍순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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